이집트 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반정부 민주화 시위 이후 견지했던 무력사용 자제 방침을 강경 대응으로 선회하려는 조짐이 뚜렷하다. 정부도 잇따라 군 개입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9일(현지시간) 이집트 관영 통신 메나(MENA)에 따르면 아흐메드 아불 가이트 외무장관은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아와의 인터뷰에서 "혼란이 빚어진다면 군대가 국가를 통제하기 위해 개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바라크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강도가 한층 거세질 경우, 군을 투입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앞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의 쿠데타 발생 경고도 있었고 군이 시위 참가자를 불법 구금ㆍ고문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군대의 무력 진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군은 그 동안 중립을 자처하면서 사태를 관망해 왔다. 그러나 정부의 잇단 유화책에도 불구, 오히려 약화하지 않는 민주화 시위 열기가 군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이집트 군은 1952년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이후 4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며 최고 권력을 누려왔다. 연간 13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원조 뿐만 아니라 최근 진출한 건설, 도로, 식품 사업 등에서 벌어 들이는 경제적 이득도 짭짤하다. 만약 국민의 열망대로 서구식 민주주의가 이집트에 이식된다면 그 동안 쌓아왔던 군부 권력의 철옹성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중동문제 전문가인 존 알터만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AP통신에 "군은 지난 2주동안 현 체제 유지를 전제로 안정을 추구하는 입장이었지만, 향후 과도정부 구성 과정에서 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권을 놓고 군부와 알력을 빚어왔던 두 개의 그룹이 와해된 점도 군의 역할 확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둘째 아들 가말을 중심으로 한 정ㆍ재계 파워 그룹과 무바라크의 정치적 텃밭인 국민민주당(NDP)은 시위 사태를 계기로 사실상 실권을 잃은 상태다. 군 입장에선 권력 공백기의 누수 권력을 거머쥘 호기를 맞은 셈이다.
군의 개입 여부는 그러나 국제사회의 견제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제동이 문제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이집트 군이 지금까지 취해온 자제 노력을 존중한다"며 앞으로도 군이 중립을 유지해 줄 것을 촉구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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