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3개를 튼 행사장에는 장학사 지서장 우체국장을 비롯한 높으신 분들이 많이 와 있었다. 걸상에 앉은 아이들 뒤 켠에는 학부모들이 앉거나 서서 행사를 지켜보았다. 졸업생 대표로 나간 나는 "삭풍이 북녘 유리창을 두드리는 이때…"하며 답사를 낭독했다. 재학생 대표의 송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담임선생님이 써 주신 답사에 나오는 삭풍이라는 말도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원천봉쇄한 '졸업 광(狂)파티'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되는 졸업식 노래를 3절까지 부르는 동안,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울었다. 3절의 가사대로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이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행사는 슬프면서도 인상 깊었다. 재학생들은 교문 양 옆에 서서 박수로 선배들을 보냈다.
거의 50년 전, 농경시대의 순진했던 초등학교 졸업식을 회상하는 것은 요즘 초ㆍ중등학교의 졸업식이 겉은 화려하지만 속이 삭막하고, 행사 후 학생들의 행동이 너무도 험악하기 때문이다. 알몸 뒤풀이나 후배들을 괴롭히는 '졸업 광(狂)파티'가 말썽을 빚자 교육ㆍ경찰 당국이 난동을 원천봉쇄한 덕분에 올해에는 비교적 조용하게 졸업식이 치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도 차가 있을 뿐 뒤풀이소동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이미 1964년에 스크럼을 짠 고교생들이 찢어진 교모를 뒷주머니에 구겨 넣고 교복 잔등에 '축 졸업'이라고 페인트 낙서를 한 채 고함치듯 유행가를 부르며 명동을 누벼 시민들이 피했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그 나이에는 교복을 입고 있는 한 벗고 싶고, 졸업을 계기로 교복과 결별하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요즘 학생들은 너무도 다르다. 기성세대는 그들의 표현욕구와 분장욕구 공연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수용하고 감당하기 어려워한다. 격렬한 뒤풀이는 주인공을 소외시킨 채 교장 교사나 내빈 위주로 졸업식을 치른 데도 원인이 있다. 성인들 사회에서도 중요한 건축물의 준공기념식을 하면서 정작 설계자를 소개하지 않고 단상에 앉히지도 않은 행사 진행이 문제가 된 일이 있다. 학생들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이와 똑같은 잘못이다.
지난해 9월 초 어느 학교의 개교기념식에서 목격한 일이다. 뙤약볕이 뜨거운 운동장에 의자를 갖고 나와 앉은 학생들에게는 행사 자체가 큰 고문이었다. 교실에서 의자를 내올 때부터 발로 차서 굴리는 학생들이 많았다. 학교 연혁보고, 이사장 교장의 치사, 지역구 국회의원 교우회장 학운위원장의 축사, 정년퇴직 교원 및 우수학생 표창…행사는 길기만 했고, 아이들은 듣지도 않았다. 그늘진 단상에서 연설하는 사람들은 뙤약볕 속 아이들의 고통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듯했다.
어떤 내빈이 "더위가 너무 심하니 간단히 하겠다"며 세 문장 정도로 격려사를 마쳤을 때,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와~!"하고 좋아했다. 더워서 어쩔 줄 모르는 학생들이 안쓰러웠던 한 교사가 분무기를 갖고 와 머리와 교복에 물을 뿌려 주었다. 학생들은 재미있어 하며 서로 물을 맞으려 했는데, 그 교사는 입에 검지를 대고 정숙을 주문하며 고루 물을 뿌려주고 다녔다. 그것만이 그 날 재미있고 볼 품 있는 모습이었다.
선생님들은 왜 학생들을 재미있게 해 주려 하지 않을까. 중ㆍ고교를 소개하는 방송프로그램에서는 삭막하고 권위적이고 앞뒤가 꽉 막힌 교장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저런 교장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얼마나 숨이 막힐까. 교장과 학생들 모두가 가엾다.
교장이 앞장서 학생 배려를
올해 어느 여고에서는 교장 선생님이 이 학교 출신 디자이너에게 부탁해 졸업생들에게 자주색 벨벳 망토를 만들어 입혔다. 멋지고 따뜻해 보이는 그 망토 하나로 학생들은 존중 받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고, 행사는 저절로 엄숙하면서도 흥겨울 수 있었다. 졸업식에서 인생에 지침이 되는 좋은 말을 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배려와 분별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교장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 교장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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