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청업체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본다는 10일 서울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판결로 소송 당사자인 최모씨와 같은 처지의 상당수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정규직으로 구제받을 길이 열렸다. 하지만, 정부나 업계에선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곧바로 정책에 반영하거나 일률적으로 적용할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해묵은 사내하청 문제의 궁극적 해결이라기보다는 본격적인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원청업체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면 ‘파견’
이번 판결의 쟁점은 사내하청을 파견근로로 볼 것인가였다. 여기서 둘을 가르는 잣대는 노동자에 대한 지배력을 누가 행사하느냐는 것이다. 앞서 대법원은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력을 하청업체가 행사하면 합법적인 하청이나, 원청업체가 지배력을 행사하면 파견근로자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대부분 현대차 정규직 노동자와 컨베이어 벨트를 사용하는 공정에서 섞여 일하며 현대차의 작업지시를 받는다는 점 ▦현대차가 최씨의 근무태도 등을 관리한 점 등을 들어 하청이 아닌 파견이라고 봤다.
자동차와 같은 제조업에는 파견근로가 금지돼 있다. 따라서 이 경우 불법파견에 해당하는데 법원은 2년 이상 파견노동을 할 경우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파견법 조항을 불법파견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사내하청노동자들은 파견법상 정규직 전환의 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판결로 사내하청을 법적 보호장치가 없는 도급이라고 주장해온 사측의 논리는 힘을 잃게 됐고, 비정규직인 사내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노동계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게 됐다.
지난해 11월 현대차 하청업체노동자 1,900여명이 낸 정규직과의 임금차액 청구소송 및 근로자지위확인 소송과 같은 집단소송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자동차업계 5만명 등 총 7만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차별 당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
노동계에서는 자동차뿐 아니라 조선, 철강, 화학, 서비스 등 전 산업에 사내하청이 만연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2008년 300인 이상 사업체를 대상으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조선업은 전 사업체의 100%, 철강은 92.6%, 자동차는 86.4%가 사내하청을 활용하고 있었다. 전 업종 평균은 54.6%로 사업체 2개 중 하나는 사내하청을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사내하청은 사업주들에게는 매력적이다. 임금을 적게 줘도 될 뿐 아니라 해고도 어려움이 없다. 반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과 처우에서 차별을 당할 뿐 아니라,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기아차 사내 하청분회의 한 관계자는 “같은 일을 하는 원청업체 정규직노동자들에 비해 임금이 50%에 불과하다”며 “냉난방과 복지시설 등 근무여건도 열악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내하청이 노동시장 양극화를 가속시킨다고 비판한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공공부문 사업체의 78%, 민간부문 사업체의 50% 이상이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등 사내하청이 일반화돼 있다”며 “정규직 채용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업들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 파견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도록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은 “사내하청과 파견여부를 판결을 통해서 일일이 판단받는 상황은 비정상적”이라며 “사내하청을 엄격히 처벌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 개정에 대해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불법파견 여부는 법개정 없이 개별사업장의 실태조사를 통해 개별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 노동부의 입장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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