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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집트의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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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집트의 행로

입력
2011.02.0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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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사태가 불확실성의 수렁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6일 술레이만 부통령과 반정부 세력의 대화로 수습 국면에 접어든 듯하던 상황은 그제 전국적 시위와 파업으로 반전됐다. 수도 카이로 등의 시위에는 수십만 명이 참가, 사태 이후 가장 많았다. 반정부 세력은 술레이만이 계엄령 해제를 거부하는 등 진정한 타협 의지가 없다고 판단,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에 맞서 술레이만은 "위기가 계속되면 쿠데타가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경 대응을 위협하기보다 타협을 촉구한 것이라지만, 그만큼 불안하고 유동적인 상황임을 일깨운다.

■ 외부 세계는 일찍부터 '혁명'을 이룬 민중의 힘을 찬탄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애초 혁명의 성공을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30년 강권 통치체제를 쌓은 무바라크가 스스로 '질서 있는 이행'을 택할 리 없다는 것이다. 체제 수호의 축인 정보기관과 군 출신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것은 상징적이다. 7일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채텀하우스(Chatham House)의 '이집트의 행로'세미나에서도 전문가들은 경찰과 군 등 국가의 힘이 온존한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술레이만이 웬만큼 사태를 장악하면, 다시 그 힘을 쓸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 그러나 술레이만이 경고한 쿠데타가 무바라크를 위한 친위 쿠데타가 될 가능성은 없다. 채텀하우스 세미나에 초청된 미 브루킹스 연구소의 전문가는 "혁명의 성공은 불투명하지만, 과거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 진압은 이미 불가능한 단계이며, 달리 정권이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는 분석이다. 그는 특히 군이 무력 진압을 피한 것은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집트 군부 지도자들은 사태 초기 워싱턴에서 미 국방부 고위층과 회동했으며, 미국은 독재를 지탱한 영향력을 긍정적으로 행사했다는 이야기다.

■ 결국 이집트의 행로는 무바라크나 술레이만이 아니라 반정부 세력과 군부, 미국의 선택에 달렸다. 민중 시위가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걷잡을 수 없게 되면, 군부가 무바라크 친위세력을 밀어내고 사태를 장악한 뒤 '질서 있는 민정 이양'을 약속하는 시나리오이다. 그리 되면, 군부는 오래 충성하던 무바라크를 재판에 넘겨 처단하거나 국외로 내보내야 한다. 그의 독일 요양원 행을 미국이 타진했다는 보도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별로 새로울 게 없는 시나리오다. 늙고 병든 제3세계 친미 독재자들이 대개 그 길을 앞서 걸었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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