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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5> 어린이과학관 벽화 그리는 '스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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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사흘간의 동행] <5> 어린이과학관 벽화 그리는 '스위치'

입력
2011.02.0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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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한 붓질이 아니에요… 동심을, 날개를, 꿈을 잉태하는 삶의 창조 작업이죠"

한낮 기온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 체온을 경험하지 못한 새 건물 콘크리트 벽의 냉기에 입김마저 잿빛인 듯했다. 살갗에 닿는 뿌연 시멘트 먼지, 코의 점막을 쑤시는 페인트 냄새조차 차가웠다.

지난달 26일 기자가 찾은 곳은 올 5월 개관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인천 계양구 박촌동 인천어린이과학관 공사현장. 널브러진 공사자재들을 피해 3층 야외공원으로 오르자 풍경이 일변하고, 먼지로 희뿌연 창 뒤로 초록 숲이 펼쳐진다. 앙상한 겨울 숲 고동색으로 헐벗은 나뭇가지들을 배경으로 펼쳐진 신록의 숲. 벽화다. 한 점 한 점 붓 끝으로 찍어낸 나뭇잎들은 겨울 눈바람을 청량한 여름바람인 양 맞서며 싱싱하게 파닥이고 있었다.

이승기와 방영됐던 이화동 날개벽화' 일약 유명세

120㎡(약 36평)의 푸른 숲 벽화는 한달 만에 완성됐다. 다양한 예술작업을 추구하는 팀인 '스위치'의 김주희(30) 김형기(29) 김형일(24)씨가 지난 겨울의 그 추위 속에 밤낮으로 매달린 결과다. 스위치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줄 장치는 널려 있는데 장치를 작동하는 방법을 모르는 세상에 나서, 스위치처럼 스스로가 장치를 작동시키는 부품이 되자는 뜻으로 이들이 지은 이름이다.

이들은 미술전문가는 아니다. 주희씨는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했고, 형기씨는 연출학을 공부했다. 형일씨의 전공은 기계공학. 그림은 취미로 그린 게 전부란다. 간단한 소개가 오고 간 뒤 속으로 '아무나 다 할 수 있다고 공공미술인가…'하는 장난스러운 생각도 슬쩍 들었다.

"영화도 해보고 글도 쓰고 이것저것 하다가 이렇게 그림도 그리는 거죠 뭐. 재미를 따라 살다 보니깐 그렇게 된 거 같은데요?"(김주희) 이들은 8년 전 단편영화를 만드는 한 인터넷 동호회에서 함께 작업하다 처음 만났다.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 '낙산 프로젝트'를 본 뒤 서울 종로구 낙산 이화마을의 한 아이 집 담벼락에 주인의 허락을 얻어 날개를 그렸다. 주희씨는 "사람이 날지 못하는 것은 숙명이지만, 날아오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우리답지 않다고 생각해, 아직은 멀어 보이는 꿈과 청춘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날개로 먼저 날아오른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5년간 힘들고 진지하게 임했던 영화와 글 대신 정작 우리가 성장하는 발판이 되어준 것은 '이화동 날개벽화'였어요. 사는 게 그런 걸까요?" 이들이 그린 '이화동 날개벽화'는 지난해 말 한 TV 프로그램에서 탤런트 이승기가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방영된 덕에 일약 유명해졌다. 학교, 공원, 건물 등 공공미술 의뢰도 쇄도했다. 날개 벽화는 낙서로 훼손된 데다 인파 탓에 주민들의 불편도 만만찮아 직접 지우고, 대신 성동구 왕십리 광장에 다시 그렸다.

그림이라뇨? 살아있는 로봇이죠!

이번 인천어린이과학관 작업은 이들의 세 번째 공공미술 작품이다. 손성현 과학관 현장소장은 "지난해 우연히 TV에서 날개벽화를 보고 우리 과학관을 꾸밀 좋은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을 것 같아 온라인 블로그 쪽지를 통해 부탁했다"고 했다. 형기씨는 "이렇게 큰 공간에 벽화를 그려본 적이 없어 고민했지만 우리를 믿고 저 넓은 벽을 내주신 것도 감사했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냈다"며 머리를 긁적인다. 이들이 맡은 공간은 야외공원 벽 말고도 전시실을 연결하는 휴게실 벽(130㎡ㆍ약 39평)이 있다. 휴게실 벽에는 3D 로봇과 우주선이 보이는 전망대를 그리기로 했다고 한다. 주희씨는 "건담이나 태권브이같이 어린이들이 알만한 걸 그려보고 싶었지만 저작권 문제 때문에 새 로봇을 디자인했고, 마치 우주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우주선 내부에서 바라본 전망대도 그려줄 생각"이라고 했다.

작업은 디자인→벽면 고르기→밑그림→초벌 색 칠하기→음영을 넣는 재색 작업→광택제 마감 순으로 진행되며, 작업 시간은 동이 트는 7시부터 '할 수 있는 데까지'라고 했다.

26일 낮 12시 휴게실에 들어서자 밑그림 작업이 끝난 로봇과 우주선 내부가 보였다. 밑그림은 컴퓨터로 디자인을 하고, 이를 빔 프로젝트를 이용해 흰 벽에 쏘고, 그 틀대로 색연필로 맞춰 그리는 식이라고 한다.

호기심이 동해 초벌 색 입히는 작업에 끼워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청했더니, 반색한다. "도와주시는 거죠."

하지만 붓을 들고 6m 높이의 흰 벽 앞에 섰더니 머리 속도 금세 새하얘졌다. '무모한 거 아닐까. 망치면 어떡하지. 이 넓은 벽면을 언제 다 칠하나….'

일단 회색 아크릴 물감을 붓에 찍어 하얀 벽면에 희미하게 그려진 선을 따라 대고 죽 그었다. 로봇 다리 관절 부분. 선 밖으로 나갈까 노심초사. 그랬더니 형일씨가 테이프부터 붙이는 게 안전하다고 귀띔을 해준다. 스케치 선에 맞춰 얇은 종이테이프를 붙인 후 그 안을 칠하면 바깥으로 물감이 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추위 탓에 붓에 묻은 물감조차 뻑뻑해지는 것 같았다. 벽도 얼음장 같다. 입김으로 벽을 녹이는 게 벅차 아예 휴대용 가스 토치를 사용해 벽을 녹인 후 칠을 했다. 그래도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하얀 벽이 드문드문 내비쳤다.

오후 4시, 맡았던 로봇 다리 일부를 겨우 칠했다. 4가지 색을 입힐 로봇의 팔, 다리, 몸통에 들어가는 부품만 수 십여 개. 두 사람이 다리 하나를 붙들고 초벌 색을 입히는 데만 반나절이 걸린다. "무슨 생각하면서 하나"고 물었더니 "열심히 그린 만큼 아이들이 '움직이는 로봇', '살아있는 로봇'이라고 생각하면서 뛰노는 상상"(김형일), "아무 생각도 안 든다"(김주희)고 답했다.

붓을 든 지 서너 시간이 지나자 팔은 물론 등, 허리마저 온통 쥐가 난다. 추위에 움츠려있었던 탓인지 온 몸도 뻐근하다. 여러 시간 선 채로 작업해야 한다. 물감도 마구 튄다. 그들의 옷에는 수개월 전 묻은 물감이 그대로 있다.

날이 어둑해질 오후 5시 무렵 가뜩이나 체력은 고갈됐는데 그들은 더욱 재촉했다. 제대로 된 조명시설이 없어 어두워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붓질을 해야 한단다.

왜 하냐고? 한 만큼 밝아지니까!

이튿날엔 야간작업까지 강행했다. 작은 전구 하나 지지대에 매달고, 천장에 쏜 프로젝트 빛으로 작업을 한다. 그런 탓에 색을 구별하기조차 쉽지 않다. 붉은 색이 남색으로도 보이고, 회색이 흰색으로도 보였다. 색을 잘못 칠하면 두 세 번 덧바르게 되고, 그러면 두께가 두꺼워져서 문제가 생긴다. 또 붓 자국이 남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 번에 깔끔하게 칠하는 게 중요한데 손에 힘은 안 들어가고 집중력도 급속도로 떨어졌다. 점점 말수도 줄었다. 시시때때로 눈이 내렸던 그 날 바깥 기온은 영하 20도였다. 실내도 별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공공미술 작업은 한겨울에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야외작업이 많아 작가들이 추위를 못 견뎌내기 때문이다. 김주희씨는 "가을에 의뢰를 받았는데, 중간에 공사가 지연되는 등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고, 완공일은 정해져 있어 기한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었다"며 "우리도 겨울 작업을 해보지 않아 이렇게 힘든 줄 모르고 덜컥 한다고 한 것"이라며 까르르 웃는다. "겨울작업은 절대 비추!(추천하지 않는다)"

28일, 로봇이 제법 위엄을 갖췄다. 로봇 주위에 3D 효과를 낼 배경인 파란 줄도 초벌작업이 완전히 끝났다. 김형기씨는 "음영을 넣지 않는 벽화도 많고, 실제로 음영작업은 품이 많이 들지만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크다"며 "이왕 할 거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설펐거나 말았거나 그 추위에 노동을 한 셈이니 일당 달라고 졸랐더니 그들은 웃었다.

그들이 이 작업에 들인 시간은 꼬박 석 달. 물감과 붓 등 재료비만 1,000만원쯤 들었다지만, 그들에게 배정된 작업 총예산은 1,200만원. 지지대 등 기구사용비와 식비를 제하면 남는 게 없다.

"뭐 하러 이 고생을 하냐"고 물었다. 추위에 손이 얼어 물감통을 엎지르기도 하고, 미끄러져 무릎을 다치기도 하고, 팔레트 대신 스티로폼을 북북 찢어 쓰고, 공사용 지지대와 난로도 인근 공사장에다가 빌려 쓰면서….

돌아온 대답.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은 욕심과 사회 한 귀퉁이라도 밝게 만들고자 하는 욕심 때문"(김주희),"나중에 어린이들이 벽화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 앨범 한 곳에 넣어주면 그걸로 너무 보람될 거 같다."(김형기)

그들은 그렇게 또 하나의 커다란 날개를 그려가고 있었다.

앞으로도 '땡기는'일은 계속할 거란다. "아직은 편한 것보다는 좋아서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란다. 전문가가 아니라는 고까운 시선에도 기죽지 않고, 쪼들리는 작업 여건에도 즐거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 작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영화연출 집필 등 그간 미뤘던 작업들부터 해치울 생각이라고 했다.

인천=강지원기자 stylo@hk.co.kr

■ 국내 공공미술 성과와 과제

국내에 공공미술(Public Art) 개념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부터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서울올림픽 조각공원 등에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자리잡으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미술관 내 예술품이 아닌 공원, 지하철, 주거지역 등 공공장소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했다.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빌딩 앞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해머링 맨'이나 청계천 입구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등도 대표적인 공공미술로 꼽힌다. 서울 포스코빌딩 앞에 공공미술 작품으로 세워졌던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은 대중들이 고철 폐기물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소나무로 작품을 가리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최근에는 공공미술이 단지 작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광명소가 되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기능까지 한다. 정부도 적극 나섰다. 2006년 '아트 인 시티', 2009년부터 매년 벌이고 있는 '마을미술프로젝트'등이 대표적인 사례. 정부는 2009년 20억원, 지난해 15억원, 올해 10억원으로 지원을 줄이는 대신 지방자치단체별로 매칭펀드를 조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최근 서울 경기 충북 등 전국 10개 도시가 변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은 예술공방으로 변신했고, 강원 태백시의 옛 탄광마을 동사무소는 미술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반응도 호의적이다. 군사지역인 강원 철원시에는 폐자재를 활용한 재활 프로젝트와 쉬리 조형물 등이 설치돼 관광객을 모으면서 지역경제에 활력이 됐다. 또 소설 의 배경이 됐던 전북 남원시 혼불 마을에는 작품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한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돼 관광지로 발돋움했다.

한편 공공미술이 전국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사후관리에 대해서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자칫 공해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김해곤 마을미술프로젝트 총괄감독은 "사후관리의 주체가 비록 지자체라고 할지라도 담당공무원들이 재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어 작품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무분별하게 퍼지는 공공미술에 대한 관리를 위해서 중앙관리센터나 비영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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