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바라크는 물러나라, 당신이 떠날 때까지 후퇴란 있을 수 없다"
'민주화의 성지'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은 11일 성난 시위대의 분노로 들끓었다. 거리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 반정부 시위대는 금세 터질 것 같은 활화산처럼 울분으로 가득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임 거부의사를 밝힌 것이 도화선이 돼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다시 광장으로 운집했다. AP통신은 이날 반정부 시위에 적어도 수백만명이 참석했다고 전했다.
이날은 이슬람권의 휴일이었으나 시위대는 금요 기도회를 마치고 약속이라고 한 듯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특히 군부가 무바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성명을 이날 오전께 발표해 그 어느 때보다 실망감이 컸다. 일부 시민들은 자신들의 요구가 절실함을 드러내고자 탱크와 장갑차, 승용차 등으로 가로막히 바리게이트를 뚫고 대통령궁으로 향했고 의회와 국영 방송국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X자 표시가 된 무바라크 대통령 얼굴 사진을 든 한 시민은 "무바라크에 이어 신뢰했던 군까지 우리를 기만했다. 독재자는 반드시 물러나야 한다"고 외쳤다. 시위 현장에 투입된 군 장교 수십명도 반정부 행렬에 동참하면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아흐메드 알리 샤우만 이집트군 소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 통치 종식을 요구하기 위해 시위에 참석했다"며 "이는 나라를 지키이 위한 것"이라고 로이터 통신에 밝혔다.
전날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이 임박했다는 외신보도가 잇따르자 타흐리르 광장은 승리감과 열망으로 한껏 부풀기도 했다. 30년 철권통치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연설을 함께 지켜보기 위해 모두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우리가 정권을 바꿨다", "무바라크 퇴진을 환영한다" 등의 기쁨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퇴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광장은 축제의 장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9월까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 점진적인 권력이양에 나설 것"이라며 대통령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자 광장은 금세 싸늘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터져 나오는 화를 참지 못해 무바라크 대통령의 연설이 비치는 대형 스크린을 향해 신발을 집어 던지는 등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성난 시위대는 "무바라크 물러나라" "무바라크, 술레이만 모두 반대"를 외쳤고, 분이 안 풀린 수 천명은 광장 근처의 국영TV 및 라디오 방송국 건물로 향하기도 했다.
11일 동이 틀 때까지 시위대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밤 새 집권당 당사와 정부청사, 의회, 박물관 등이 밀집한 카이로 시내 곳곳을 활보하며 "무바라크 퇴진"을 외쳤다. 100만인 항의 시위가 예정된 이날 무바라크 대통령의 연설에 실망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지고 있어 이집트 시위 사태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이날 시위는 특히 알렉산드리아 등 이집트 각지에서 일고 있는데다, 전국 노동자들의 파업과 농민, 도시 빈민층 참여까지 이뤄지고 있어 자칫 유혈충돌까지 예측되고 있다.
박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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