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의 파행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제2의 인권위'라 할만한 인권정책연구소가 3월 출범한다. 전직 인권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연구소의 성격도 '대안 인권위'를 표방하고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인권정책연구소 출범을 준비 중인 김형완 전 인권위 인권정책과장은 11일 "인권위가 제 기능을 못하는 현 상황에서 대안이 절실했다"며 "3월까지는 사비를 털어서라도 연구소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그는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 한켠에서 인권정책연구소 설립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씨는 1998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국내 첫 특검)의 특별조사관,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민관 이력을 두루 지닌 인권 분야 베테랑으로 꼽힌다. 인권위 설립 때부터 함께해 '인권위의 산파'로 불기기도 했던 그는 현병철 현 인권위원장 취임 이후 갈등을 빚다 지난해 9월 인권위를 떠났다.
그는 당시 5개월만 더 채우면 20년 근속으로 공무원연금 대상자가 돼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었음에도 독립성과 전문성이 결여된 인권위 내부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사직서를 냈다.
김씨가 새롭게 꾸리는 인권정책연구소는 민간연구소로 인권정책 생산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에 인권 관련 운동단체는 많지만 정부기구와 민간단체를 잇는 독립적 연구기관은 전무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첫 번째 사업은 올해 11월로 창립 10년을 맞는 인권위의 10년 역사를 담은 자료집 발간. 김씨는 "인권위에서 보낸 지난 10년은 영광과 보람의 시간이었다"면서도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국민께 채무를 진 기분이다. 반성문을 쓰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집은 전직 인권위 위원장과 간부 등 50여명의 인터뷰, 문서자료 등을 담을 예정이다.
연구소는 동시에 인권정책 제안과 사회권 의제에 관한 담론 개발, 인권정책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 운영 등을 해나간다. 민간인 사찰, 야간집회시위 금지 등의 문제를 외면하는 인권위를 대신해 현안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국내에서 사회복지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사회권에 대해서도 폭넓게 연구할 계획이다.
설립 멤버는 정책연구원 4명과 전문위원, 이사진 등으로 구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김씨와 함께 인권위를 동반 사퇴한 유남영, 문경란 전 인권위 상임위원은 구두로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국 초대 인권위원장과 박래군 인권재단 상임이사, 인권변호사 조용환씨 등도 접촉 중이다.
연구소 출범 소식을 듣고 헌법학자 김두식 경북대 법대 교수, 인권위 직원 등이 십시일반으로 약 400만원의 성금을 보내왔다. 연구소 사무실은 시민단체 등이 모여있는 마포구 합정동이나 망원동 등지가 유력하다. 김씨는 "공간을 내주겠다는 단체도 있지만 인권 문제는 특히 독립성이 중요하기에 독자적 공간을 마련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상태"라고 말했다. 초대 연구원과 연구소 위치 등은 다음주께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김씨는 "인권 문제는 보수와 진보를 따지지 않는다"며 "활발한 정책 생산을 통해 인권 분야에서의 정책 경쟁 시스템을 확립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혜경 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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