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상공을 방어하는 오리콘 대공포의 군납비리는 허술한 납품절차 때문에 군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군은 1975년부터 이 무기를 도입해왔다. 이후 보수와 성능개량을 거쳤는데 98년부터 2003년까지 포 몸통 교체를 거쳐 납품한 79개 중 현재까지 배치돼 있는 49개가 '짝퉁'이었다. 나머지 30개는 수명이 다해 폐기됐다.
오리콘은 스위스제 무기로 이번에 문제가 된 포 몸통 교체작업은 미국 업체에 의뢰했다. 국산무기의 경우 제조나 수리과정을 국방기술품질원에서 수시로 참관하고 점검하기 때문에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외국 무기는 제조사의 영업기밀이 포함돼 있어 최초 구입 당시 시제품을 평가하는 것 외에는 추가적인 검증절차가 생략된다.
따라서 해당 업체 명의의 품질보증서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2006년 방위사업청이 만들어진 이후에는 품질보증서를 모두 공증받도록 하기 때문에 위조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당시에는 이 같은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짜 보증서를 만들 수 있었다. 매년 납품되는 외국산 무기는 수천 개에 달한다. 보증서와 함께 첨부되는 계약서에도 품목 수량 납기일 납지(납품장소) 등 기본적인 사항만 표기돼 있다.
오리콘을 납품 받은 육군 군수사령부의 검수절차도 부실했다. 무기 검수는 외형육안판단, 시험평가, 성능검사 등 5가지로 구분되는데 오리콘은 이미 한국에 배치해 사용하다 수리를 맡긴 경우이기 때문에 가장 낮은 단계인 서류검토와 육안검사만 시행했다. 군 관계자는 "소비자가 자동차를 구입해서 인도받을 때와 마찬가지"라며 "일일이 뜯어보거나 포를 직접 쏴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의 수사는 지난해 초 시작됐다. 육군은 배치된 오리콘에 대해 매년 5,6대씩 번갈아 가며 충남 대천사격장에서 성능시험을 하고 있는데 이 때 수명주기인 5,000발에 채 미치지 못했는데도 포에 균열이 가고 파손되는 일이 여러 번 발생했다. 이미 포 몸통을 결합할 때 규격이 맞지 않아 애를 먹던 차였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육군 군수사령부의 검수담당 군무원과 납품담당자, 관련업체 직원 등 12명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경찰, 인터폴과 합동으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앞서 군무원에 대한 군 당국의 내사에서 검수규정 위반이나 금품ㆍ향응수수 등 대가성은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12명에 대한 계좌추적과 함께 관련업체의 탈세나 비자금조성 혐의 등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한편, 오리콘 폭발사고로 인명피해도 발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09년 9월 육군 제1방공여단 소속 정모 준위가 오리콘 사격훈련 도중 불발로 약실에 끼어 있는 탄을 제거하려다 갑작스런 폭발로 한쪽 눈이 실명됐다. 하지만 군 수사당국은 이날 기자의 거듭된 확인요청에 "군납비리 외에 사고는 절대 없었다"고 감추는데 급급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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