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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콩나물교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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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콩나물교실의 추억

입력
2011.02.0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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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때 번호는 60번대, 그것도 후반대의 67번 혹은 68번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ㅎ'자 성씨를 가졌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이 번호를 매길 때 생년월일이나 신장 등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성씨의 가나다 순을 기준으로 할 때는 영락없이 60번대였다. 허씨나 홍씨 혹은 황씨 친구들이 한 반에 있을 경우 그들보다는 앞 번호였지만. 국민학교 한 학급 학생 수가 70명 안팎이던 때의 이야기다. 이른바 '콩나물교실'이었고, 통학 버스는 '콩나물버스'로 불렸던 시절이다.

이십몇년이 흘러 1990년대 초 사회부 기자로 교육부를 취재할 때 당시 대학정책 담당 관리였는지 교육전문가였는지 어느 인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2010년쯤이면 대학이 학생들을 찾아다니며 제발 우리 대학에 와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학생 정원을 채우지 못해 문을 닫는 대학도 속출할 것이다." 그때만 해도 그 말을 믿기 어려웠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대입 문제가 가장 큰 사회문제이던 시절이었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런데 "그런 날이 올까" 하고 코웃음을 쳤던 그 허황한 듯하던 예상이 현실이 됐다. 몇몇 대학의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지만 많은 대학은 학생들을 어르고 구슬러 모셔와야 하는 세상이다.

지난해 교육통계에 따르면 연도별 학급당 학생 수는 1970년 초등학교와 중학교 공히 62.1명이던 것이 점점 줄어들어 2010년에는 각각 26.6명, 33.8명이 됐다. 40년 만에 거의 절반 정도로 줄었다. 교사 1인당 학생 수로 따져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는 못 미치지만 상당히 근접한 수치다. 교육여건도 개선됐지만 저출산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아무튼 한 반 70여명의 친구들과 악다구니치듯했던 어릴 적 기억을 가진 이로서는 한 반 급우가 30여명밖에 안 되는 학교생활이란 어떤 것일지, 사실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의 현장, 교육특구로까지 불리는 서울 강남과 목동 지역 중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는 전국 평균(33.8명)을 훨씬 넘는 45~48명에 달해 '초과밀학급'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소식이 엊그제 한국일보 지면에 소개됐다, 21세기판 '콩나물교실'인 셈이다. 이런 변화를 보다 보면, 학급당 학생 수니 교사 1인당 학생 수니 하는 통계적 수치가 뭐 그리 대수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군대 내무반에서 한국 남자들이 교전수칙보다는 한국사회 위계질서의 법칙을 몸으로 때우며 배우듯, 우리는 급우들이 많든 적든 교실에서 교과내용보다는 경쟁이라는 냉혹한 현실 그 자체만 끊임없이 반복학습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도심 공동화로 인한 학생 수 감소가 뉴스가 됐다. 서울 도심 종로구 교동초등학교의 경우 올해 신입생이 단 7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사동 부근을 지날 때 이 학교를 보게 된다. 1894년에 '관립교동소학교'로 개교한, 올해로 117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최초의 초등학교다. 윤보선, 심훈, 윤극영, 윤석중, 조남철, 어효선 등이 수학한 이 학교는 1960~70년대만 해도 학생 수가 4,000여명에 이르렀지만 지난해 재학생은 100여명에 불과한, 서울에서 가장 작은 초등학교가 됐다. 학교 명칭으로 쓰인 교동(校洞)이라는 지명이 궁금해 찾아보니, 고려시대 이곳에 한양향교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7명의 교동초등학교 신입생, 그 장구한 마을의 역사를 쓸쓸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하종오 사회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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