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FO가 추락했다. 하필이면 달동네 재개발 지구다. 집값은 떨어지고, 주민들은 격분한다. 우주적 상상력에 꼬릿꼬릿 생활의 냄새라니! 장진 작ㆍ연출의 연극 '로미오 지구 착륙기'는 아예 '서민 SF'라는 팻말을 달고 시작한다.
무명의 달동네가 일약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자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 벌이는 작태는 고소를 머금게 한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절호의 기회라 여긴 이른바 지도층 인사들의 속물적 반응은 아예 풍자 SF의 수준이다. 그러나 영화 같은 스펙터클이나 메커니즘을 기대한다면 큰 오산. 무대의 연극적 전략이라면 이렇다. 즉 최소한의 무대 장치를 이용, 한 무대 안에 여러 공간과 그에 상응하는 여러 배우들을 등장시켜 다양한 변화의 양상을 시각화하자는 것이다.
뜬금없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재개발 계획마저 무산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이 펼치는 소동이 연극의 줄기다. 외톨이로 지내다 자신의 방으로 찾아 온 외계 생명체와 친해져 로미오라는 이름까지 달아 준 소녀, 불시착한 UFO를 돌려 보내고, 다시 재개발 추진 쪽으로 대세를 돌리려는 주민들의 동태 등은 우주와 일상을 한 데 아우르는 상상력이 펼쳐져 있다. 특히 졸지에 세계 외신의 주목을 받게 되자, 이 참에 한국의 위상을 올리려 온갖 궁리질을 해대는 지도층 인사들을 희화시키는 대목은 무대의 입지점을 새삼 알려준다.
익히 알려진 장씨의 코믹한 대사와 상상력 넘치는 전개를 받치는 무대 장치는 뜻밖에도 최소한이다. 그러나 중극장으로는 과분한 70여명의 출연진이 번갈아, 거푸 무대에 오름으로써 무대에는 활력이 넘친다. 특히 주요 인물은 트리플 캐스팅으로 설정, 이 무대에 깃든 공동체적 성격을 강조하기도 한다.
삶의 냄새 물씬 풍기는 이 연극은 서울예술대학 출신의 창작극 동아리 '만남의 시도'가 결성 30주년을 기념하는 뜻에서 만들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배우 김용수(1기)를 시작으로 장진(9기), 배우 황정민(10기)ㆍ신하균(13기) 등 서울예대 출신이 학과를 불문하고 모인 창작 동아리다.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은 현재 재학생인 30기까지를 포함, 연극ㆍ영화ㆍ무용 분야에서 일하는 70여명이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이제는 영화 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장진이다. 이 작품은 그가 '웰컴 투 동막골' 이후 8년 만에 집필한 희곡에 근거한다. 16일~20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김연재 김원해 등 출연. 1588-1555
김청환기자 ch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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