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을 대표하는 여자연예인이 없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외국 손님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한국은 동양인데도 우리나라보다 머리카락 노란 사람이 더 많아서 놀랐다." 미의 기준이 서구화하고 있습니다. 대중매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길거리에서도 느끼게 됩니다. 제가 운영하는 회사는 최근 15년 동안 시대를 대변하는 배우자상의 이미지를 연예인을 통해 구체화하는 설문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그때 젊은이들이 바라는 이성상을 상징적으로 파악할 수 있지요. 아름다운 여성의 계보라고도 할 수 있는 어떤 흐름이 드러납니다. 남성이 선망하는 이성상에 부합하는 여성 연예인은 시대별로 달라집니다. 예컨대, IMF 외환위기 전에는 김혜수씨로 대표되는 건강미인이 각광받았습니다. 거국적인 IMF 쪼들림 이후에는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생활력 강한 또순이 스타일의 알뜰미인이 사랑을 받았는데, 최진실이 대표적인 얼굴이었지요.
그렇다면 요즘은 어떨까요? 이 시대 남성들은 자신의 이성상을 어떤 연예인에게 투영하고 있을까요? 재미있는 것은 이전과 달리 부각되는 특정한 이미지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들 예쁘고 늘씬한데, 뚜렷한 개성이나 자기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얼굴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요.
좋아하는 연예인이 제 각각이다보니 현상화시킬 만한 이름은 찾을 수 없게 됐습니다. 대신, 스스로를 예쁘다고 여기는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외모만 놓고 본다면 제멋에 사는 시대라고나 할까요? 자기 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고,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유행따라 미모 만드는 여성들
타고난 외모를 비관하거나 어떤 연예인의 이미지를 선망하기보다는 노력하고 투자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를 가꿔가는 적극성이 커지고 있다고 받아들여도 무방할 듯합니다. 성형수술, 운동, 메이크업 등 방법은 여럿이지요. 얼마 전 지인의 조카가 회원으로 가입한다기에 덕담 한마디 해주러 만났습니다. 처음 봤는데도 낯이 익더군요. 나를 만난 적이 없다고 하기에 머리를 쥐어짜내며 "어디에 사느냐?",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호구조사까지 벌여야 했습니다. 처음 본 여성에게 "우리 전에 만나지 않았나요?"라고 종종 묻게 되는 세상입니다.
직원 면접 때, 회원 면담 때, 심지어 머리를 손질하러 미용실에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하도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 얼굴이 헷갈리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귀띔해주더군요. 성형수술이 흔해졌고, 아름다움에도 유행이 있다보니 인상이나 느낌이 비슷한 여성이 많아졌다고요. 물론 중요한 것은 성형을 받았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스스로 미를 만들어가고, 그래서 자기 외모에 만족도가 높은 '자칭 미인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남녀 간의 만남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요. 10여년 전만 해도 만남이 잘 안 이뤄지면 '내 탓이오'였습니다.
이제는 아닙니다. 자기는 다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하므로 만남의 결과를 상대방에게 전가합니다. 이같은 변화를 좋다, 나쁘다로 평할 수는 없습니다.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수용해야겠지요. 미를 추구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자기 외모에 자신감이 생기면 삶의 자세도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자칫 외모 지상주의에 빠지는 것은 아닐는지, 자기애가 지나쳐 타인의 입장은 외면하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 남녀 본색
미혼 남녀들은 자기의 외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결혼정보회사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는 자사 회원 중 분석 가능한 자료를 제공한 미혼남녀 8만2,582명(남 4만57명, 여 4만2,525명)을 대상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인상등급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A부터 F까지 6개의 등급 중 남성의 경우 전체 응답자의 41.1%가 자신의 인상등급을 'C'라고 답했고, 여성은 41.0%가 자신의 인상등급을 'B'라고 답했다. C를 평균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자신의 외모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다.
남녀 스스로 평가한 자신의 인상등급 비율을 보면 남성은 C>B>A>D>E>F였고, 여성은 B>C>A>D>E>F였다. 또한 여성은 평균 이하인 D, E, F의 비율도 남성보다 낮게 나타났다.그러니까 남성보다 여성이 자신의 외모에 더 만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이 '자칭미인'의 시대인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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