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더니 소말리아 해적 떼가 코앞까지 왔다. 나라가 가히 패닉 현상이다. 거대한 와류 속에서 보통 한국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거대한 게이트 앞에서 왜소해지는 개인의 존재를 극작ㆍ연출가 박근형씨가 찾아 나섰다. 설 연휴와 맞물린 데다 공연 기간(1월 27일 ~ 2월 6일)도 턱없이 짧아 자칫 관심에서 비껴났을 뻔한 박씨의 신작 '처음처럼'이었다. 그러나 작품이 공연된 대학로예술극장3관은 극단 골목길과 박씨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아내는 열기로 한겨울이 무색했다.
작품은 박씨가 부지런히 발표해 온 일련의 신작 대열에서 뚜렷한 결절점을 형성한다. 근ㆍ현대사의 큰 물결 속에서 휩쓸려 온 어느 4대를 따라가 그들의 남루한 속내를 파헤친 2000년작 '대대손손'을 발전적으로 계승한다. '대대손손'의 인물들은 나름 사회와 역사에 대해 분노하고 절망하지만 철저히 속물이었다. 그러나 신작에서는 그 같은 위선의 싹을 아예 잘라버렸다. 마치 만화적 상상력을 적극 도입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빌'을 보듯 그의 새 무대는 키치적이며 경쾌하다.
그러나 이 세상을 헤집는 칼날은 잔뜩 벼려져 있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큰 교회의 장로, 검찰에서 "한칼 날리는 특수통", 벤처 회사 CEO 등을 친인척으로 둔 주인공은 출세한 친인척들에 대한 적의로 이글거린다. 출세에 눈 먼 형은 "결국 우리 부모님을 죽게 만든 아주 드러운 놈"일뿐이다.
"일상에서 감히 가보지 못한 저 세상까지 가는 거지. 내 마음 속에 있는 악마적 역동성 혹은 정직함을 펼쳐 보이는 거야." 동생이 세상에 대해 터뜨리는 분노는 그가 친 사고가 "세상이 정직한 척하며 분노를 뿜은 것의 백만 분의 일도 안" 된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한국 현대사가 경험해 온 파행과 기행은 급기야 "난 기회가 된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할거"라는 뻔뻔스러움의 산물이라고 무대는 말한다.
자칫 감성적으로 흐르기 쉬운 내용이다. 그러나 배우들의 행동은 매우 절제돼 있다. 극단 목화류의 산대놀이 시선, 아니면 노골적인 신파 어법을 적소에 배치해 객석이 허투루 무대에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도록 한 박씨의 연극적 전략 때문이다. 진지함을 끝까지 거부하는 것은 무대의 전략이다. 척이 진 형제가 마침내 바닥을 뒹굴며 난투를 벌이는 대목, 객석은 뜻밖의 음악을 접한다. 1980년대를 풍미한 팝송 'Sultans Of Swing'의 선율은 점점 더 커져 마침내 발악이 된다. 역사와 개인에 대한 개성적 인식과 형상화가 두드러진 이 연극은 제2, 제3의 무대를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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