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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한 청년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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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한 청년의 죽음

입력
2011.02.08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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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뭔가요? 밤에 자면서 꾸는 꿈 말고,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꾸는 꿈은 뭔가요?

미래에 이루기를 희망하는 삶의 방식이겠지요. 아니면 직업적 성취이기도 하겠지요. 아니면 그 둘이 합쳐져 직업적 성취를 바탕으로 하는 총체적인 삶의 방식이겠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꿈을 꿉니다. 앙리 레비의 말처럼 모든 사람은 자신의 꿈을 수십 번도 더 배반하지만 그래도 꿈을 꿉니다. 두고 온 꿈과 가야 할 꿈 사이에서 사람이 살아갑니다. 어떤 순간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나리오 작가의 좌절된 꿈

그래서 꿈은 장년보다는 주로 청년들의 몫입니다. 다양한 꿈을 꾸는 청년들에 의해 그 사회의 미래의 모습이 결정됩니다. 한 사회는 결국 그 청년들이 이룬 꿈의 구체적 총합입니다. 그러니 사회는 그 꿈을 보호하고 격려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꿈의 실현을 보장하진 못하더라도 그 꿈의 추구는 보장해야 된다는 겁니다. 적어도 문명국이라면 청년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꿈에 복무하고 실패했을 때는 그 꿈을 배반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보장은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꿈이 그 과정이 안전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정이 힘든 꿈도 누군가는 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꿈에 성실히 복무하던 한 청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나쁜 꿈을 꾼 것도 아니고, 화려한 것도 바라지 않았으며, 더구나 특별한 실패도 하지 않은 청년이 그 꿈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의 결핍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2 세의 나이였습니다. 긴 수업을 끝내고 직업으로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을 시작하는 나이였습니다. 재능은, 재능보다도 더 강건한 꿈에 대한 의지는 제대로 펼쳐보지도, 평가 받지도 못하는 나이였습니다. 선택의 잘못이라면 그가 꿈으로 선택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낳고 자란, 꿈을 고르고 그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던 사회였습니다. 이 야만의 세상은 그 청년의 꿈의 결과가 아닌, 그 추구를 보호하는데 통렬히 실패한 것입니다.

꿈을 위해 그는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시나리오는 영화의 밑그림입니다. 그리고 꼭 누군가는 이 청년처럼 방에서 혼자 써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에 비춰보면 가장 혹독한 노동조건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시간을 자기 연민과 절망, 그리고 불확실성 속에서 보내야 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창작이 고통스럽지 않은 창작자는 없는 것입니다.

영화라는 거대한 문화 산업에서 시나리오 작가가 하는 일은 인문적 깊이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제작자가 산업적 고려에 힘을 쏟을 때, 감독이 영화의 다른 미학적 요인들에 고민할 때 시나리오 작가는 혼자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듬으며 그것에 섬세한 깊이를 만들어 갑니다. 시나리오 작가는 영화라는 매체 속에서 산업적 요구와 인문적 요구의 균형을 맞춰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한 나라의 영화계 속에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대우가, 그 위치가 미미할수록 영화는 급속히 산업 일변도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기본적 생존 조건에 절망

그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져 성공을 거두는 것에선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그 실패를 경험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에 실패한 것입니다. 혹독한 절망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를 죽음으로 내 몬 이유는 그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절망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생존 조건들이었습니다. 왜 그토록 가혹한 조건을 피해 빠져나가지 않았냐고 물을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사람이 꿈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꿈이 사람을 선택하기도 하는 것이니까요.

적어도 오늘은, 우리 모두에게 영화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자기기만이고, 요란한 사치입니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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