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서 개헌 논의가 한창이지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그의 말 한마디면 소모적인 논쟁을 쉽게 종식시킬 수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다시피 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정국 현안에 침묵을 지켜온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개헌 문제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직결된 터라 다를 줄 알았지만 예외가 아니었다. 민감한 이슈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 선거전략상 유리하다는 판단인지 모르겠으나 그에 못지 않게 부정적 측면도 크다.
중도층의 지지 상대적으로 낮아
대다수 국민은 그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알 방법이 없다. 개헌은 물론이고 과학벨트 입지를 둘러싼 정치권 논쟁, 인사청문회에서 비롯된 당청 갈등, 새해예산안 일방처리를 둘러싼 정국 경색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 답답하다. 구제역과 물가, 전세대란, 취업난 등 피폐한 민생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을 하며, 남북대화와 6자회담 등 남북관계와 4대강, 한미FTA 등 끝없이 분출되는 이슈들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 궁금할 뿐이다.
물론 그가 정책 현안들에 대해 전혀 말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지난달 국회에서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을 담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제시하며 복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후 사회 전체가 복지논쟁에 휘말렸는데도 더 이상의 언급이 없었다. 아주 가끔씩만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말을 던질 뿐이다. 트위터나 미니홈피에 올리는 글은 정책이나 이슈보다는 한가한 얘기들뿐이다. 그러다 보니 언론은 선문답하듯 하는 그의 한마디에 담긴 속뜻을 해석하기에 바쁘고, 국민은 그것으로 갈증을 채우는 희한한 양상이 반복된다.
반면 다른 대선주자들은 현안마다 빼놓지 않고 한마디씩 한다. 없는 것도 만들어 얘기하는 판이다. 그것이 자신을 알리려는 노이즈 마케팅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국민은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안다. 나름대로는 충실한 검증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표 측은 다른 대선주자들을 모두 더한 것보다 지지율이 높은데 구태여 위험을 감수하며 진흙탕에 발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이 선거전략이라면 보통 위험한 발상이 아니다.
박 전 대표의 주요 지지층은 영남과 보수층, 고령층이다. 수도권과 30~40대, 중도층 지지는 상대적으로 낮다. 내년 대선에서 승부처는 수도권과 중도층의 향배가 될 것이라는 데는 선거전문가들 간에 이견이 없다. 6ㆍ2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듯이 보수ㆍ영남 지지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의 지지세가 탄탄해 보이지만 야권 단일화로 진보-중도를 대변하는 강력한 후보가 나올 경우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로서는 지난 17대 대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과정에서 이명박 후보를 앞서다 손학규의 탈당으로 중도표가 이명박으로 쏠리면서 여론조사에 뒤져 무릎을 꿇었던 쓰라린 경험이 생생할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중도층이 박 전 대표를 대통령 감으로 선뜻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연 그가 대한민국호가 안고 있는 현안들에 대처할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하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국정현안에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은 선거전략 이전에 정책적 소신이나 경험이 부족하고 현안들에 대한 충분한 공부가 안 돼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대선주자는 국정 꿰뚫고 있어야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는 게 당장의 과제인 그로서는 중도층의 이런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의 모든 분야가 머리 속에 들어 있었다. 물론 그들의 국정에 대한 평가는 별개지만 어쨌든 모든 분야에서 막힘이 없고 자신감이 넘쳤다. 적어도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가진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면 국정 전 분야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부족한 분야는 주변의 조언과 노력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가 국정 현안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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