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처치 곤란한 게 '선의'에 의해 빚어지는 악행이다. 서울 강남의 B 자율고에서 자행된 수험생 생활기록부 비교과영역 조작도 그런 면이 없지 않다. 교사들이 대입 수험생 제자의 자기소개서를 손봐 주는 건 공공연한 일이 됐다. 나아가 생활기록부 여백을 채워주는 것은 제자를 위한 '보완'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알량한 선의가 입시제도와 학교교육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8일 발표를 보면 B 자율고의 생활기록부 조작은 의도적으로 거리낌없이 이루어졌다. 고3 360명 중 200명 이상의 기록이 바뀐 건 결재권자인 교장의 개입이나 묵인 없인 불가능하다. 조작 내용을 보면 의도성은 더욱 확연해진다. 일례로 행동특성은 애초에 '말하기를 좋아해 괜한 오해를 사기도 하나…'였던 게 '말하기를 좋아하며…'로, 진로지도 상황은 '1학년 회사원, 2학년 검사'였던 게 '1학년 금융직, 2학년 금융직'으로 바뀌었다. 대학 모집단위 별로 생활기록부 상 인성과 적성을 반영하게 돼 있는 수시 서류전형을 노린 '맞춤형 조작'인 셈이다.
이 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인천 모 고교에서도 유사 의혹이 불거졌듯,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관리도 허술하다. 교과부 관리지침은 무시되기 일쑤다. 학생기록부 작성용 컴퓨터 프로그램의 담임교사 ID는 교사들간 통용되고 있고, 1ㆍ2학년 때 생활기록부 내용을 대입시 전에 최종 '보완'하는 것도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다. 한 교사는 "학부모들이 요청하면 거절하기 어렵다"고 고백했다.
생활기록부 비교과영역 기술 내용의 대입시 반영 비중은 미미하다고 볼 수도 있다. 연세대 2011학년도 수시 우선선발의 경우, 비교과영역 평가 반영률은 전체의 4%에 불과하다. 하지만 1점차로 당락이 갈리는 만큼 조작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여지는 매우 크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입시제도 개혁의 순항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을 엄중히 처리하고 전면 조사로 이런 행위를 불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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