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B자율형사립고가 3학년 학생 200여명의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을 입학사정관 전형 선발에 유리하게 고친 사실이 7일 서울시교육청 감사 결과 적발되자 일선 고교 전반의 생활기록부 관리 실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생활기록부 조작 의혹은 지난해 9월 인천 I외고에서도 불거졌다.
생활기록부 관리 시스템이 학교장과 부장교사 등 일부 관계자가 결탁할 경우 내용을 쉽게 고칠 수 있어 이 내용을 반영하는 입학사정관 전형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는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인성 등을 종합 관찰ㆍ평가해 학생지도 및 상급학교 입시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교사들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를 통해 작성한다. 인적사항, 학적사항, 출결상황, 수상경력, 자격증 취득, 진로지도, 재량활동, 특별활동, 교외체험학습, 교과학습발달, 독서활동 등이 반영되며 담임교사가 학생의 행동 특성과 종합의견을 기재하도록 돼 있다. 교사들은 학년말인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생활기록부를 작성해 최종적으로 학교장의 승인을 받는다.
그런데 B고에서 진로지도, 특별활동,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 등의 평가를 해당 학생 입학에 유리하게 고쳤다 문제가 됐다. 원래 ‘조용히 잘 지냄’이었던 종합평가가 ‘활발하고 외향적 학생으로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1학년 때 은행원이었던 학생의 희망 직업은 일본어 통역사로 고치는 등 진로 희망을 지원 대학의 학과 특성에 맞춰 수정하기도 했다.
규정상 내용을 수정할 때는 증빙서류를 갖춰 정정대장에 기재하고, 최종적으로 학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B고에서는 수정 권한이 없는 교사가 정당한 근거 없이 임의로 고치는 등 허술하게 진행됐다.
이와 관련, 교사들은 생활기록부 관리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서울 A고 김모 교사는 “생활기록부는 관리자 권한을 갖고 있는 교장, 교감, 학년부장 등 몇 사람만 마음 먹으면 내용을 고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사는 “교사들끼리 서로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고 있는 경우도 많아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대신 임의로 처리하는 경우가 있다. 수정 권한이 있는 타 교사의 아이디로 접속해 수정하면 사실상 흔적도 남지 않는다”며 교사들의 허술한 보안 의식도 지적했다. 서울의 한 사립고 김모 교사는 “1,2학년 때 처음 입력하는 과정에서 검증이 이뤄져야 하는데 학년말과 2월초에는 업무가 몰리는 시기라 대충 작성했다가 입시가 닥치는 3학년 때 학부모의 요청에 따라 내용을 수정하는 편법이 성행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동훈찬 전국교직원노조 정책실장은 “한번 작성된 내용은 다시 수정할 수 없게 하는 방안이 필요하고, 교사들의 잡무를 줄여 생활기록부를 처음부터 충실하게 기재하도록 만드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교육청은 B고의 교장과 전ㆍ현직 교감 등 4명을 중징계하고, 관련 교직원 13명을 경징계ㆍ경고할 것을 학교 법인에 요구했다. 14일부터 서울지역 자율고ㆍ특목고 44곳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다음달부터 서울의 전체 중ㆍ고교를 대상으로 생활기록부 관리 실태 일제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부적절한 내용 수정이 드러나면 성적 조작으로 간주해 엄중 조치할 계획이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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