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안동시 북후면 물한리에서 한우 11마리를 2년간 사육하던 강모(53)씨는 구제역으로 소를 모두 살처분했다. 자식처럼 키워온 한우를 땅에 묻은 그의 통장에는 2,450만원이 꽂혔다. 8마리는 각 500만원, 3마리는 각 300만원 등 4,900만원의 보상금이 책정됐고 이중 절반을 먼저 지급받은 것이다. 하지만 강씨는 송아지를 다시 키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영세농이다보니 사료를 외상으로 주지도 않아 1,500만원을 현금으로 지불했고 짚을 700만원 어치나 사먹이는 등 큰 곳에만 2,200만원이 들었다. 8㎞ 떨어진 임대 농장을 오가며 직접 소를 키운 결과로 손에 쥔 게 2,000만원 정도에 불과, 2년치 인건비로 쳐도 손해보는 장사다. 송아지를 다시 입식, 내다 팔려면 최소 2년은 더 걸릴 형편이어서 아예 소 사육의 꿈은 접었다.
# 같은 안동에서 소 8,000마리를 키우는 4명의 일가친척은 살처분 보상비로 모두 360억원을 책정받았다. 이중 절반인 180억원을 지급받은 이들도 영농자금 상환하랴, 사료값 갚으랴 보상비가 자꾸 쪼그라들고 있다. 하지만, 우선 임시 노동자 수십 명을 해고해 인건비 부담을 던 데다, 목돈을 만지면서 재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제역 사태로 8일 현재 전국의 소와 돼지 1,500여만 마리 중 20%가 넘는 317만여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전체 보상금액이 1조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축산농의 ‘모럴해저드’까지 거론하고 있지만, 대다수 영세 축산농들은 “일부 기업농의 사례를 들어 실상을 호도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요컨대, 수십~수백억원대의 보상금을 받은 기업농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소 20~30마리 이하를 키우는 중소 축산농은 시가보상에도 불구하고 회생이 어려울 정도의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 4일 충북 충주에서 한우 27마리를 키우던 김모(61)씨가 자살한 사건은 중소 축산농의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기업농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공개한 구제역 보상금 지급현황을 보면 A영농법인은 한우 2,115마리를 살처분, 105억여원의 보상금을 받게 됐다. B법인은 45억여원, C씨는 18억여원을 받는다. 또 D씨는 돼지 1만7,000여 마리를 살처분해 53억여원의 보상금 중 절반인 26억여 원을 이미 손에 쥐었다. 이들은 생계안정자금으로 1,400만원을 추가로 받게 되면서 구제역 종식 후 가격이 안정될 경우 재기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농도 사정은 제각각이다. 경북 안동시 풍산면에서 3년 동안 돼지 8,000마리를 기르던 임모(50)씨는 살처분 보상비로 24억원을 책정받아 절반인 12억원을 받았으나 초기 자본금도 건지지 못할 형편이다. 한 해 3억원의 농장 임대료와 보상비의 절반을 넘는 사료값, 인건비, 운영비 등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것. 여기에다 종자돼지 가격이 구제역 발생 전보다 두 배 정도 오른 데다, 정상출하 때까지는 1년6개월은 걸려 임씨는 아예 사육을 포기할까 고민 중이다.
안동=권정식기자 kwonjs@hk.co.kr
영주=이용호기자 ly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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