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사태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뛰고 있다. 살처분 농가의 임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문을 닫는 도축장과 사료공장이 속출하고 있다. 여기에다 각종 행사들이 취소돼 꽃 주문량이 줄면서 화훼농가마저 죽을 쑤고 있다.
경북 영주의 한 양돈단지에서는 지난해 12월 중순 돼지 1만여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올들어 임시 노동자 20명이 일터를 떠났다. 매달 숙식을 제공받으며 140만원의 급여를 받던 중국인 노동자 4명도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돼지 1만1,000여 마리를 살처분한 경기 용인시 O영농조합도 일거리가 사라진 직원 30여 명을 계속 붙잡아둘 수 없는 상황이다. 조합 관계자는 “정부 측에 직원들 문제를 수 차례 건의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어 이달 말에는 모두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축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구제역 최초 발생지인 경북 안동의 유일한 도축장인 새한축산 정문은 발생 직후인 지난해 11월말부터 지금까지 쇠사슬로 굳게 닫혀있다. 권재순(53) 대표는 “직원 80여 명이 출근도 못하는 형편이지만 매달 2억여 원의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며 “축산농가에는 보상금과 입식 자금 등 지원책이 다양하지만 도축장은 맨손에 빈털터리”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료공장도 매출이 30% 가까이 떨어지면서 문닫는 곳도 생겨났다. 안동시 남선면 농협의 사료공장은 지난해 12월초 폐쇄됐다 설 연휴 직후 겨우 시험가동에 들어갔다. 울산은 아예 외지 사료 반입을 전면 중단했고 충남 천안의 한 사료공장은 거래선인 호남지역으로부터 반입 자제 요청을 받았다. S사료회사 영남판매본부 김석인 본부장은 “사료의 원료인 국제 곡물 가격이 지난해 11월부터 30% 가까이 뛰어오른 데다, 가축이 300여 만 마리가 살처분되면서 사료업계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며 “가격을 올리고 싶지만 눈치만 보는 처지”라고 말했다.
구제역 피해는 화훼농가에까지 번졌다. 중부권 최대 장미단지인 충북 진천꽃수출영농조합에 따르면 지난달 장미 출하가격은 10송이당 평균 3,000원으로 예년의 8,000원선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졸업시즌인 이번 주부터 7,000원선을 회복했지만 예년의 1만원보다 30% 낮은 수준이다. 장미 생산농가 이현규(46)씨는 “구제역 여파로 지자체나 기관, 단체들이 행사를 줄줄이 취소하면서 올 겨울에는 꽃 수요가 거의 없었다”며 “인건비는커녕 기름값도 못 건질 형편”이라고 푸념했다.
청주=한덕동기자 ddhan@hk.co.kr
용인=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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