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금고는 보안유지가 안 되니까 우리 같은 업체를 찾는 거죠." 여기서 말하는 보안은 안전이 아니라 손님의 신원이 외부에 노출이 되느냐 아니냐를 뜻한다.
10억원의 현금상자를 맡긴 보관의뢰인의 휴대폰마저 대포폰으로 확인돼 개인물품 보관업체의 운영시스템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여의도백화점 10층에 위치한 S업체는 의뢰를 받은 물품의 보관ㆍ유지는 최고급 수준이고 지문인식장치인 디지털도어록 등 첨단장비를 이용한 보안ㆍ경비도 철저한 반면 의뢰인 신원확인절차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스위스식 비밀금고'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문제의 현금상자를 보관한 이 업체의 1평짜리 개인창고 사용료도 월 19만원이 넘을 만큼 고가이기도 하다. 이 개인창고는 열쇠를 가진 의뢰인만 열수 있다. 이 업체가 자리잡은 여의도는 회사 밀집지역이어서 기밀서류나 미술품 등 귀중품을 맡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대문의 한 물품보관업체 관계자는 "한마디로 개인비밀창고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S업체처럼 개인물품 전문 보관서비스회사는 2007년 무렵 국내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고 서울에만 5곳 정도가 영업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금고는 부피가 작아 덩치가 큰 물품을 맡기기 어려운데다 신분확인절차 때문에 틈새시장이 생기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개인물품 보관업체가 이처럼 '묻지마 금고'형태로 운영될 경우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데 있다. 사생활 보장을 이유로 고객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데다 보관물품의 내용물도 묻지 않는 게 관행이기 때문이다. 강남의 한 물품보관업체 관계자는 "현금, 유가증권, 장물 등은 보관금지품목이라고 사전에 알리고 있지만 밀봉된 현금상자를 갖고 와서 이 안에 들어있는 건 책이라고 말하면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신생업종이다 보니 법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 한 경찰관계자는 "개인과 사설업체의 정상적인 계약에 따라 이루어진 거래이기 때문에 손님의 신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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