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렬한 풍자와 조롱, 익살과 해학이 넘치는 패러디에 대한민국이 들썩이고 있다. 특별한 기술 없이도 쉽게 패러디를 만들 수 있는 응용프로그램의 발달과 스마트폰 등의 보급 확산으로 패러디 생산과 유통이 쉬워지면서 패러디가 온라인 공간을 뒤집어 놓고 있는 것이다.
패러디는 정ㆍ재계 인사, 연예인 등 주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언행이나 비리, 불공정 행위 등을 소재 삼아 동영상, 사진, 그림, 만화, 그래픽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포격 도발 이후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연평도에서 보온병을 포탄이라고 말한 장면이 방송되자 인터넷에는 관련 패러디가 봇물을 이뤘다. 대형 마트의 보온병 코너를 촬영한 사진에 ‘마트 포탄 코너에 왔다’‘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포탄에 이은 최고의 포탄, 보온병 포탄’과 같은 냉소적 글을 붙인 패러디가 줄을 이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별채용 파문 당시에는 영화 ‘대부(The Godfather)’의 포스터 등을 활용해 만든 패러디 영상물 ‘굿 파더(Good Father)’가 인터넷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의회 출석을 거부하자 네티즌들은 오 시장이 떼쓰는 아이 같다며 그의 이름을 빗대 ‘5세 훈이’라는 별명을 붙였고, 오 시장은 ‘5세 훈이의 철없는 나라 걱정, 미래 걱정’이라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반격을 가했다.
지난해 연말 종합편성 채널 사업자 선정 이후에는 한 네티즌이 제작한 ‘조중동 TV 편성표’가 온라인 공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급속히 확산됐다. 지상파 방송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명을 패러디해 만든 이 TV 편성표는 종편 사업자로 선정된 보수 언론사인 조선ㆍ중앙ㆍ동아일보가 보여줄 TV 프로그램을 상상한 것. ‘청와대 시트콤 ’‘가상 군복무 버라이어티 ’‘리얼 야생 국회 버라이어티 ’‘외화시리즈 ’처럼 정치 현실을 신랄하게 비튼 내용으로 이 패러디는 네티즌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패러디 확산에는 디지털 인프라 구축 못지 않게 정치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정보기술(IT)과 문화의 결합 현상을 다룬 의 저자인 이광석 호주 국립 울런공대학 연구교수는 “패러디는 물리적 저항, 반체제 운동의 대안”이라며 “뛰어난 풍자가 돋보이는 패러디는 정치적 억압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억압된 사회일수록 패러디의 생산ㆍ유통이 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상관 관계를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현 정부 출범 후 표현의 자유 제한 논란, 국민과의 소통 부재 등이 이슈화하면서 패러디의 생산ㆍ유통도 함께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강희경기자 kstar@hk.co.kr
박철현기자
■ 왜 열광하나/ 웃음 넘어 가슴 뚫리는 카타르시스 '선사'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재미없다. 조금 비틀거나 뒤틀고 익살과 해학, 조롱을 섞으면? 재미는 백배 천배가 된다. 팍팍한 삶에 윤활유가 되고 고통스런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판타지가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위정자들을 마음껏 조롱하며 카타르시스도 느낀다.
세상을 뒤집어 보는 패러디가 유행이다. 단지 재미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전문 창작집단이 등장하고 관련 애플리케이션과 소프트웨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온라인 공간의 패러디 열풍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풍자와 유머로 진지함을 비틀다
패러디의 인기 확산 배경에는 우선 엄숙함 뒤에 숨겨진 우스꽝스러움을 찾아내고 폭로하는 패러디의 근본 속성이 자리잡고 있다. 패러디(Parody)는 ‘대조적인 노래’(Counter-song)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Paradia’에서 비롯된 말이다. ‘para’에는 ‘~에 반대하여’ ‘~에 빗대어’라는 뜻이 있는데, 패러디는 고대부터 원작을 풍자하는 문학과 음악의 표현 기법이자 사회 문제를 반영하는 시대의 거울로서 꾸준히 활용돼 왔다. 디지털 사회에서도 패러디는 딱딱하고 지루한 소재를 원래 맛은 유지하되 수용자가 씹어 삼키기 쉽게 변형한 ‘창조적 가공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올해부터 월 1회 시사풍자와 인디밴드의 공연을 결합한 이색 이벤트 ‘시사콘서트’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계기로 정치 이슈를 대하는 대중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한바탕 축제 분위기가 연출된 촛불집회 이후 대중은 일관되게 진지함을 재미로 포장한 이슈에 강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패러디의 유행은 뉴스, 시사프로그램의 연성화 현상과 묶어 생각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풍자와 유머로 포장한 진지함이 풍성해지려면 대중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안이나 이슈가 있어야 한다. 정치적 억압이 강할수록 더 감각적인 패러디가 나오는 아이러니인 셈이다.
패러디스트, SNS로 날개를 달다
현 정부가 지난해부터 시행 중인 인터넷 포털의 실명 확인 절차와 달리 실명 인증이 필요없는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이용 급증도 패러디 확산을 가능케 한 원인이다. SNS의 익명성은 온라인 공간의 핵심이랄 수 있는 자유로운 문화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SNS에서는 ‘이미지 패러디’같은 간단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패러디를 만들고 주고받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글자수 제한(140자 이내)을 받는 트위터는 함축과 은유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수라는 점에서 ‘패러디스트’(parodist)들의 창작욕을 자극하고 있다. 트위터에서는 평범한 이용자들이 자신의 글을 빨리 퍼지도록 하기 위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세상을 꼬집는 패러디를 제작해 올리는 경우도 목격할 수 있다.
물론 SNS를 통해 퍼지는 패러디가 현실 비판이라는 순수한 목적에서 벗어나 상업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대안 미디어를 연구해온 문화연구가 조동원씨는 “미디어 기술 발전은 커뮤니케이션의 민주화를 이끌며 사회운동 촉진으로 이어지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 등 주류 사회의 돈벌이 수단으로 귀결되고 말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패러디스트들의 패러디 대상이 된 기업이나 인물이 오히려 유명세를 얻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ㆍ특정 상품이 구설수에 휘말리게 해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켜 판매를 늘리는 마케팅 기법)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 부족 시대의 대안, 패러디
콘텐츠 유통 채널이 많아졌지만 개성을 중시하는 디지털 세대들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들이 부족한 것도 디지털 패러디가 각광 받는 배경 중 하나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이 촉발시킨 무선 인터넷 혁명으로 기술 발전은 급속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들이 창조한 온라인 공간을 채울 혁신적인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현실. 이 때문에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갖춘 아마추어들의 콘텐츠, 그 중에서도 웃음과 재미를 한꺼번에 선사하는 패러디가 대안 콘텐츠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특별한 이미지 편집 기술 없이도 패러디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들이 등장해 누구나 패러디물을 생산ㆍ유통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 있다. 이광석 호주 국립 울런공대학 연구교수는 “패러디는 물리적 힘으로 바꾸기 어려운 것에 대한 조롱이라는 점에서 아마추어들이 주체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만든 패러디는 감성과 본능에 호소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 끊임없이 이성적인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 인터넷 매체가 물꼬… 유튜브 등장으로 동영상 시대 활짝
대한민국 패러디의 역사는 기술 발전과 궤를 같이 해 왔다. 1990년대 중후반 PC통신과 인터넷의 본격적인 보급 확대는 대중과 신문ㆍ방송 등 기존 주류 매체 간 커뮤니케이션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 오면서 새롭고 다양한 형태의 정보 유통을 확산시켰다.
문학의 한 방식으로 쓰이던 패러디는 98년 인터넷 매체 딴지일보의 창간을 계기로 본격 대중화의 길로 들어섰다. 딴지일보는 영화 포스터 등에 전ㆍ현직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해 만든 패러디물로 주목을 끌었다.
딴지일보의 정치 패러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아마추어 논객의 급증을 견인했다. 2000년대 중반 블로그가 인터넷 공간의 흐름을 주도하게 되면서 주부, 학생, 자영업자 등 기존 패러디 독자들이 직접 패러디를 제작하게 된 것이다. 특히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17대 총선 등 굵직한 정치 이슈가 잇따르면서 패러디는 온라인의 화두가 됐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변형한 '탄핵의 제왕', 영화 '사마리아' 포스터에 노 전 대통령 얼굴을 넣은 '노마리아' 등이 당시 등장한 패러디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이 소녀에게 돌을 던지라'는 포스터 문구의 '소녀'는 '대통령'으로 치환됐다.
2005년 유튜브의 등장은 동영상 패러디 시대를 열었다. 패러디물이 양적으로 팽창했고, 정치 풍자보다는 인기 TV 프로그램 등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변형한 패러디가 또 하나의 엔터테인먼트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패러디가 '유머 코드'로 자리매김한 것과 달리 해외에서 패러디는 사회풍자로 정착한 상태다. 황실과 경찰의 권위주의를 비틀어 표현한 영국의 그래피티(graffitiㆍ스프레이 페인트로 벽 등에 낙서처럼 그리는 그림) 작가 뱅시(banksy)는 작품 한 편이 32만 파운드에 팔려나갈 만큼 패러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대표 사례다.
김소연기자
■ 저작권 침해·명예훼손 합법과 위법 사이에 일률적 기준 아직 없어
패러디가 대중적인 창작 활동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패러디 소재로 삼았다면 저작권 침해 가능성이 있고, 패러디 대상에 대한 명예훼손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패러디는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부터가 위법일까.
패러디의 저작권 위반에 관한 판결은 2001년 가수 서태지가 자신의 히트곡 'Come Back Home(컴백홈)'을 개사한 '음치 가수' 이재수의 패러디곡 '컴배콤'에 대해 판매, 방송 및 상연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사건에서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이 내린 판단이 유일하다. 당시 법원은 ▦해당 저작물이 아닌 사회 현실을 대상으로 한 패러디 ▦원작에 비평적 내용을 부가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패러디 ▦그저 원작의 특성을 흉내내 웃음만 자아내는 정도의 패러디는 저작권을 위반한 것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판례를 그대로 적용하면 현재 영화, 방송 프로그램, 음원 등을 이용해 사회의 특정 현상이나 인물을 희화화하고 있는 패러디는 모두 저작권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그러나 사용자제작 콘텐츠(UCC)와 저작물 활용 패러디가 디지털문화의 흐름인 점에 비춰 저작권법을 획일적으로 적용해 패러디스트들을 범법자로 만든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법과 현실의 이같은 괴리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CCL(Creative Commons License)이다. CCL은 저작권자가 완전 또는 제한적으로나마 타인의 저작물 이용을 허용한다는 사실을 표시하는 것으로, 일부 포털은 이를 적극 도입ㆍ활용하고 있다.
패러디는 표현 방식이나 내용의 강도에 따라 형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성립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무법인 한결의 문건영 변호사는 "패러디의 적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패러디 제작자의 의도, 패러디 대상과 패러디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저작권 위반 여부, 명예훼손죄 적용 등에 대한 일률적 기준을 제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패러디가 사회 문제화할 경우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박철현 기자 karam@hk.co.kr
■ 누가·왜 만드나
지난해 4월 '놀이'하나가 네티즌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놀이는 서울시 디자인 정책에 대한 생각을 인터넷 게시판에 한두 문장으로 남기면 그 내용을 스티커로 만들어 시 정책홍보용 광고판이나 포스터 등에 말 풍선 형태로 부착하는 것이었다. 네티즌들은 광고판의'서울이 좋아요'문구를 활용, '서울이 좋아요?''강남만 좋아요''디자인 하느라 애들은 굶어요'등 기발하면서도 번뜩이는 재치가 엿보이는 400여 개의 패러디 문구를 쏟아냈다. 네티즌들은 인터넷 지도로 자신의 문구가 어느 지점에 붙어 있는 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네티즌들은 이 놀이에 '해치맨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울시가 발칵 뒤집혔다. 서울시는 패러디 놀이를 진행한 측에 중단을 요구했고 경찰은 이들을 소환 조사까지 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단순한 대학 선후배들의 모임에 불과했다.
정부나 정치권을 비꼬는 내용이 많아서인지 패러디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패러디스트들을 정치적ㆍ이념적 의도나 배후가 있는 집단 또는 개인으로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패러디 제작자들은 대부분 대학생 직장인 등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만 현실 문제에 관심이 많고, 침묵하기 보다는 깨어 있길 원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해치맨 프로젝트를 진행한 '디자인그룹 FF'도 서울대 미대 선후배들의 학술 모임이다. 이 모임이 패러디 작업을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2007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선정된 서울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학교 과제용으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디자인 수도 선정, 시범지역 선정, 노점상 철거, 예산 집행 등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를 알리고 싶었다. 시민들의 의견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땅한 통로가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서울시의 디자인 수도 광고물 패러디였다. 시민이 디자인 수도에 대해좋은 의견만 말하는 모습을 담은 서울시 광고물에 진짜 시민 의견을 써넣자는 아이디어였다. 이들은 칫솔과 세제로 더러워진 디자인 거리 바닥을 닦는 방법으로 메시지를 표시하는 '청소 그래피티', 회의용 빔프로젝트를 개조해 서울 도심 건물에 메시지 투사하기, 헬륨 풍선에 문구를 새겨 광화문 광장에서 들고 다니기 등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 실행에 옮겼다. 모든 메시지는 인터넷을 통해 수집한 시민들의 패러디 의견이었다. 활동 모습은 고스란히 트위터 등으로 전파됐다. 활동에 참여한 민모(27ㆍ아이디 띵굿)씨는 "당시 디자인 수도에 관한 인터넷 사이트가 4개 있었지만 의견 게시판을 둔 곳은 한 곳도 없었다"며 "뭔가 색다른 방법으로 시민 의견을 모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어 패러디를 택했다"고 말했다.
최근 인기와 주목을 함께 끌고 있는 패러디 그룹 '대한민국자식연합'도 평범한 직장인들이 참여하는 모임이다. 트위터를 통해 알고 지내던 이들이 대표적 보수 단체 중 하나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을 패러디 해보자는 뜻에서 만들었다. 평소 생업에 종사하면서 트위터나 메신저 등으로 의견을 교환한 뒤 대본 작성, 동영상 제작, 이미지 편집 등 각자 역할을 분담해 작업을 하고 이를 한데 모아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한다. 패러디 아이디어는 트위터 당원 2,000여 명이 낸 아이디어 중에서 고른다. 지난해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별채용 파문 당시 영화 대부(Godfather)를 패러디한 '굿파더(Goodfather)'는 동영상 조회수 60만 건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이밖에도 주요 20개 국(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공용물건 손상 혐의가 적용돼 기소되거나 '조중동 TV 편성표' 등으로 네티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패러디스트들 모두 평범한 대학 강사와 대학생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패러디 작업에 대해 특정 의견을 일방적으로 전달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경직된 사람들에게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방법으로 말 걸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대한민국자식연합 오유석(35) 대표는 "패러디는 (사회에 대해) 쌍욕을 하며 힘을 빼거나,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기 보다는 비꼼이나 풍자를 통해 심각한 문제도 함께 웃으며 생각해 보자고 말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한 전파와 토론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패러디스트나 패러디물은 자연스럽게 걸러지게 된다"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kstar@hk.co.kr
■ 어느 패러디스트의 고백
"국민들은 세상 돌아가는 일이 답답하고 화가 날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감정이 들면 대중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속시원히 말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패러디는 말하고 싶어도 드러내 놓고 분출할 수 없는 국민의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조중동 TV 편성표''서울시 무상급식 반대 광고 패러디''르네 마그리트 그림 패러디' 등을 만들어 네티즌들의 큰 호응을 얻은 황모(25ㆍ아이디 ELLIOT)씨는 패러디가 주목을 끄는 이유에 대해 "패러디가 국민 마음 속 욕구를 쏟아내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한 의도로 패러디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마치 패러디를 하라고 소재를 제공해 주는 것 같다"고 슬쩍 비틀었다.
황씨의 최근작 '조중동 TV 편성표'는 보수 언론이 모두 종합편성 채널 사업자로 선정된 것을 걱정하며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다 아이디어를 얻었다. 보수 성향의 종합편성 채널이 방송을 시작했을 때 국민들에게 선보일 프로그램을 가상의 편성표로 풍자해 보여주면 재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황씨는 신문 TV 편성표를 펼쳐놓고 프로그램 이름을 봐가며 '안상수의 <진품명품> ' '청와대 시트콤 <몽땅 내사람> ' '외화시리즈 <언더커버 보스-장관님은 위장 전입중> ' 등 패러디 아이디어를 짜냈다. 제작한 패러디는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에 올렸고 패러디는 순식간에 온라인 공간으로 퍼졌다. 언더커버> 몽땅> 진품명품>
"이미지 작업을 끝내고 트위터에 올린 뒤 새벽에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깨어 보니 인터넷 기사까지 쏟아져 나오는 등 엄청 유명해졌더라고요."
황씨는 국민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패러디물이 계속 나오려면 제작자의 익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패러디를 그냥 패러디로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가 중요한데, 패러디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수사까지 하는 상황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가 이런 부분에서는 선진국과 달리 유연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황씨는 "패러디 제작자도 최대한 사실에 근거해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강희경기자 kstar@hk.co.kr
■ 세상 달구는 패러디 무엇이 있나
패러디물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면 어디서든 대화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이슈가 무엇이고, 이슈의 쟁점이 무엇인지 꿰뚫고 있다는 반증일테니. 최근 회자된 패러디물에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해학이 넘친다. 물론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과 함께….
● 그 회사(TV 드라마 '시크릿가든'주제곡 '그 남자'를 패러디 했다. 원곡은 연인에 대한 애타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지만 패러디곡은 야근이 잦은 직장인의 애환을 담았다.)
"한 회사는 오늘도 야근합니다. 그 회사는 열심히 일만 합니다. 매일 그림자처럼 그대를 따라다니며 그 회사는 회의를 하고 있어요. 얼마나 얼마나 더 일을 이렇게 빡세게 하며 맨날 이 바람 같은 오티, 이 거지 같은 제안 계속해야 니가 나를 월급 주겠니. 조금만 일찍 가자 조금만 하루 칼퇴 하면 이틀 철야하는, 늘 일만 하는 난 지금도 피곤해서 이렇게 좁니다.(중략) 친한 친구에게도 못하는 얘기가 많은 그 회사의 하루는 업무투성이. 그래서 그 회사는 맨날 늘 일만 했대요 돈 벌려고 또 하나마나 회의 또 하면 뭘 해 회식. 제발 연차 쓰고 쉬고 오면 안 돼요. 난 사랑 받고 싶어 회사여 매일 속으로만 가슴속으로만 소리를 지르며 그 회사는 오늘도 날 새고 있대요. 그 회사가 거기란 걸 아나요. 그렇다고 나가는 건 아니죠. 이번 달에 인티(인센티브) 나오니까."
● 안상수 패러디(지난해 연평도 보온병 포탄 발언, 여성을 자연산 생선에 비유한 발언으로 논란을 초래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여전히 수많은 패러디물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보온병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포탄이 되었다(김춘수의 시 '꽃'개작)
•'이것은 보온병이 아니다'그림 파일(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변형한 그림 파일)
•별명 시리즈: 행불 상수(행방불명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는 점을 꼬집음)→보온 상수(보온병 포탄 발언)→자연 상수(자연산 발언)→배신 상수(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 자진사퇴 요구)→오십상수(5.18 묘지 참배 과정에서 상석(床石)에 발을 올려 놓은 이유가 오십견 때문이라고 설명하자)
● 소말리아 해적과 무상급식(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을 구출한 이후 "도 넘은 아덴만 마케팅"이라고 지적한 야당 및 진보 진영의 입장을 패러디)
민주당: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무상급식 제공해야
민노당: 피랍선원 구출작전, 과연 한국 정부가 한 것 사실인가? 미국과의 공조 조사해야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 구출작전 제기, 민주당이 먼저 했어. 대통령 지시 없었다
이정희 민노당 대표 : 이번 사건이 우리 정부 소행인지, 소말리아 소행인지 나중에 말씀 드리죠
한화갑 평화민주당 대표 : 소말리아는 납치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 : 소말리아가 피랍하든지 말든지 우리가 왜 신경 씁니까?
● 통큰 치킨 패러디
•버뮤닭 삼각지대(롯데마트가 밀집한 인천 부평구 지역을 표현한 말. 이 지역 롯데마트 3개 점포를 꼭지점으로 연결한 삼각 지대에 들어 있는 통닭집은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배나 항공기가 사라지는 것처럼 모두 없어질 것이라는 의미)
•닭세권(롯데마트와 도보, 자전거, 승용차, 대중교통으로 5분 이내 거리에 있는 지역을 역세권에 빗대 패러디)
•얼리어닭터(통큰 치킨을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롯데마트에 줄지어 모인 이들을 얼리어댑터에 빗대 패러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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