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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의 사진으로 본 한국현대사] <14> '양쯔강 580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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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의 사진으로 본 한국현대사] <14> '양쯔강 5800km'

입력
2011.02.0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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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매체인 세계일보로서는 창간을 기념해 굵직한 장기 기획 탐사보도를 시도했다. 그 첫 번째가 1989년 중국 양쯔(揚子)강의 발원지에서 하류까지 샅샅이 훑는 '양쯔강 5,800km' 였다.

두 팀으로 나눠 진행된 탐사팀은 양쯔강 발원지에서 쓰촨(四川)성 청두(成都)까지를 탐사하는 팀과 충칭(重慶)에서 상하이(上海) 하류까지 탐사하는 두 팀으로 구성되었는데 나는 후자에 속했다. 총 28일이 소요되는 이 취재에는 당시 조규석 특집부장과 중국인 통역 심씨, 그리고 통일교 재단의 사진사와 KBS PD 등 6명이 한 팀을 이뤘다.

양쯔강!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대하(大河)를 취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 충칭에서 강을 타고 내려가 상하이까지 향하는 대장정에 들어선 것이다. 새벽에 배를 타고 하루 종일 내려와 도착한 곳이 싼샤(三峽)댐 건설로 전체가 수몰돼 현재의 위치로 옮긴 윈양(雲陽)이다. 윈양은 1,700년의 역사를 가진 삼국지의 장비 묘가 있는 곳이다.

삼국지를 즐겨 읽었던 나는 이곳 저곳 장비 묘를 카메라에 담으며 처음 온 곳인데도 왠지 낯설지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묘지의 중심에 자리잡은 결의루(結義樓)에는 천하통일의 웅지를 품고 도원에서 형제의 결의를 맺는 유비, 관우, 장비의 모습이 실물보다 훨씬 큰 석고상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두보의 시를 읊으며 댐 건설로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싼샤 협곡을 지나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 징저우(荊州)를 지나 웨양(岳阳)시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웨양보다는 악양으로 더 알려진 이 곳은 당나라 때 시인 묵객들이 들끓던 곳으로 이백, 두보, 백거이 등이 시상을 펼치던 곳으로 유명하다. 악양루에 올라 바다와 같이 넓게 보이는 둥팅호(洞庭湖)를 한 번 바라본 후 양대 적벽이 있는 홍호(洪湖)로 향했다.

양대 적벽이란 삼국시대 적벽대전(赤壁大戰)의 현장과 도연명의 적벽을 일컫는데 삼국지를 통해 상상했던 적벽은 실제로 그리 웅장하지 않았다. 최근 중국 영화로 제작되어 잘 알려진 적벽대전은 제갈공명과 주유가 연합한 촉나라와 오나라가 조조의 위나라에 맞서 바람을 이용해 대승을 거둔 전쟁으로, 이로 인해 천하가 셋으로 나눠지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조규석 특집부장이 흥에 겨워 75도짜리 '빼갈'과 승부를 벌이더니 결국 수레에 실려 숙소까지 오게 되었다. 적벽에서 대전을 벌이다 깨끗이 패한 셈이다.

다음 행선지는 천하명산으로 알려진 장시(江西)성 루산(廬山)이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루산은 171개의 봉우리와 계곡 및 바위 동굴, 싼뎨취안(三叠泉) 등 22개의 폭포와 포양(鄱阳)호 등 14개의 호수를 배경으로 중국의 기라성 같은 시인들이 이 곳을 찾아 풍류를 즐긴 곳으로 이태백, 도연명, 두보, 백거이, 왕안석 등이 시대를 넘나들며 절벽의 석각과 석비에 4,000여 편의 주옥 같은 시를 남겼다.

루산에서 가장 풍치가 좋은 향로봉 산기슭 연못 가장자리에 당(唐)대의 시인 백거이가 말년에 짓고 살았다는 초당을 둘러본 후 진(晉)대의 최고 시인인 '귀거래사'의 주인공 도연명 기념관을 찾았다. 5,000평 규모의 기념관에서 멀리 떨어진 루산 산기슭 탄산(炭山) 암벽에 각인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바라보자니 마치 내 자신이 도연명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술에 취한 시인을 흉내 내기도 했다.

장시성을 떠나 이틀을 배로 내려가니 난징(南京)에 도착했다. 기차편을 이용해 난징에서 50여 ㎞ 떨어진 안후이(安䘗)성 마안산(馬鞍山)시로 향하니 이태백 기념관과 태백루가 자리한다. 술을 좋아한 이태백이 강에 비친 달빛이 너무나 아름다워 달을 잡으려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깃든 착월대(捉月臺)에 올라 강물을 굽어보니 취라산 바위 옆에 마치 달을 잡으려고 나는 듯한 이백의 모습을 한 석상이 있었다. 안내원은 마안산시가 이백을 팔아먹으며 산다고 했다. 난징에서 하루를 묵고 상하이까지 특급열차로 내달렸다.

상하이 남천호텔에 여장을 풀고 최대 번화가로 불리는 난징루(南京路)를 둘러보았다. 난징루는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되고 번화한 상업지역으로 보행자 전용도로로 이뤄져 한국의 명동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난징루를 지나 도시를 끼고 있는 양쯔강 하류 황푸(黃浦)강과 항구를 둘러보니 해방 전인 1944년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외숙부 집에서 기거하며 오오사카 상선에서 일할 때가 생각났다.

젊은 나이에 전쟁에 징발되어 군 수송선을 타고 상하이까지 군수 물자를 나르던 과거가 주마등처럼 떠올라 착잡한 마음과 함께 당시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거리를 보며 잠시 세월의 흐름을 잊었다. 상하이에서 28일간의 기나긴 일정을 마무리하며 중국의 2대 젖줄인 양쯔강과 황허(黃河)강 두 곳 중 하나를 보고나니 감개가 무량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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