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공부라는 단어만 들어도 하염없이 눈물이 났어요. 그러나 이젠 사회복지사라는 꿈이 생겼죠."
오는 9일 서울 화곡동 성지중학교를 남편 정상경(67)씨와 함께 나란히 졸업하는 김간랑(60)씨는 지금까지 한번도 학교 문턱에 가보질 못했다. 강원도 삼척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씨는 조카 9명을 돌보느라 학교에 갈 엄두를 못 냈다. 공부하고 싶다고 울며 떼를 써보기도 했지만 "여자가 학교 다녀서 무엇하냐"는 가족들의 타박만 돌아왔다. 김씨는 소 키우고 밥 짓는 게 세상 일의 전부인줄 알았다고 했다. 김씨는 한 동네에 살던 이웃집 총각과 결혼했지만 남편도 초등학교만 갓 졸업해 배움이 짧긴 마찬가지.
김씨 부부는 적어도 배우지 못한 서러움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다. 부부는 30년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길거리에서 야채, 과일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네 남매를 키워냈다. 김씨는 "배운 거 없는 부모지만 그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첫째 아들은 치과의사, 둘째 아들은 병원 경영자, 첫째 딸은 물리치료사, 둘째 딸은 초등학교 교사로 번듯하게 성장했다.
자녀들의 성공으로 부부의 한은 어느 정도 풀어졌지만 학업을 향한 열망은 여전했다. 김씨는"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큰 손자가 '할머니는 나이도 많은데 왜 글을 모르냐'고 물어봤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김씨는 용기를 내 야학을 다니며 2004년 검정고시로 초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2009년 성지중학교에 남편과 함께 입학했다.
김씨는 "남편과 함께 대학까지 다닐 생각"이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해 몸 아프고 가난한 노인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 중에 학교 다니는 걸 가족들에게 말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면 집에선 공부를 할 수 없잖아요, 잘 모른다고 말해야 더 많이 배울 수 있는데 안타깝죠."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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