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선 연일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청년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목표는 오로지 무바라크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는 것이다. 젊은 층의 분노는 왜 이제서야 폭발했을까.
7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무바라크 대통령 일가가 국부를 독점, 국민의 생활고가 극심하게 악화된 것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물가폭등, 높은 실업률뿐만 아니라 오랜 독재에 따른 무바라크의 사리사욕 실태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1981년부터 권좌를 지킨 무바라크 대통령의 재산은 700억 달러(78조1,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집트 국내총생산(GDP)이 2009년 2,168억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여당인 국민민주당(NDP)을 통해 기업 카르텔을 구성, 철강 시멘트 목재 비료 등의 산업을 독점하며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이익을 내는 각종 투자 협상에 관여, 이 과정에서 얻은 수입에도 손을 댄 것으로 파악된다. 주변 인물들도 독재자의 사욕 챙기기에 편승, 무바라크의 아들 가말의 측근 아흐메드 에즈는 이집의 철강시장의 3분의 2를 장악한 거대기업 회장으로 부를 쌓았다. 시위대는 에즈 소유의 건물에 세 차례나 방화, 분노를 표출했다. 이와 관련, 가디언은 방만한 국영기업, 낡은 인프라, 부패한 관료제도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미국의 압박으로 무바라크는 2005년 첫 다당제 대선을 통해 당선된 이후 무마책으로 독점해온 서비스 분야를 일부 개방하고 생필품을 생산하던 국영 사업장들을 국내외 기업들에 매각했지만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현재 이집트의 공식 실업률은 9%대지만 실제는 20%를 웃도는 것으로 추정되며 인구의 약 40%가 빈곤층이다. 특히 젊은 층은 인구의 60%지만 전체 실업자의 90%일 정도로 열악하다.
무바라크의 뒤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조약을 체결한 뒤부터 매년 13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지원해왔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 조지 W 부시 정권은 ‘중동 민주화 구상’을 발표했으나 정작 이집트의 정치개혁에는 관심이 없었다. AP통신은 “친미 국가를 양성하려 했던 미국의 중동정책이 오히려 이집트 내 반미운동을 확산시켰다”고 분석했다.
무바라크가 유화책으로 꺼내든 학력신장 운동은 역설적으로 이번 시위의 주동력이 됐다. 대학졸업자를 양산했지만 고학력 일자리는 늘지 않았던 것이다. 90년도에 14%였던 대졸자의 실업률이 2008년에는 두 배 이상(28.5%) 급증했다. 그래서 튀니지에서처럼 이집트에서도 배웠어도 일자리를 못 구한 청년층이 무바라크 하야를 외치게 된 것이다. 이들은 고학력답게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시위에 활용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집트 고학력자들은 희망과 동떨어진 현실의 빈곤을 극복할 길이 없자 시위에 나섰다”고 전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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