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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멘토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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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멘토가 된다는 것

입력
2011.02.07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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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밤에 MBC의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을 보다가 나는 조금 울어버렸는데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러했으리라. 참가자 이동미씨와 심사위원 중 하나인 가수 이은미씨 때문이었다. 이동미씨는 이전 예선에서 성대를 혹사하는 창법에 대해 혹독한 지적을 받은 모양이었다. 십 수 년 동안 몸에 배인 습관을 며칠 만에 고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며칠간 그녀는 익숙한 자기와 낯선 자기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듯 보였고 무대에 선 그녀는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불안정해 보였다.

노래를 겨우 끝내고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쏟아져 내리는 그 눈물을 보면서 따라 울지 않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은 이은미씨였다. 그는 좀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는데, 우리가 흔히 가족에게 느끼는 그 기분 그대로, 너무 마음이 아프면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이다. 심사 소감을 말하고 나서 그는 고개를 숙였고 한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함께 울고 있었던 것일까. 이은미씨의 간곡한 진심이 느껴져서 조금 더 울게 되었다.

말하자면 멋진 도전이었고 또 그만큼 멋진 심사였다는 얘기다. 멋진 심사란 무엇일까. 그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에게 좋은 멘토(조력자)가 되어주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렇다면 좋은 멘토란 무엇인가를 물어봐도 되겠다. 아시다시피 멘토라는 말의 출처는 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 출정 길에 오를 때 그는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의 장래를 그의 오랜 친구인 멘토르에게 부탁한다. 덕분에,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귀향했을 때 그의 아들은 의젓하게 성장해 있었다.

그로부터 영어권에서 멘토르라는 고유명사는 아버지 같은 스승(father-like teacher)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도움을 주는 자를 멘토(mentor)라 하고, 도움을 받는 자를 멘티(mentee)라 한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에서 그 멘토르가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두드러지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들 텔레마코스로 하여금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찾는 모험 길에 오르게 한 것은 실제 멘토르가 아니라 멘토르로 변장한 여신 아테나였다.

이런 설정에서 메시지 하나를 추론해낼 수는 없을까. 아테나가 멘토르로 변장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텔레마코스의 시선에서 보자면 아테나가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멘토르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었고 모험에 나설 수 있었으니까. 이를테면 좋은 멘토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멘토르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지혜와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것. 나를 잘 아는, 내 편인, 그런 사람만이 나를 진정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모험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텔레마코스에게 멘토르(로 변장한 아테나)는 말한다. "걱정 마라. 꼭 해야 할 말의 대부분은 네 스스로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처 못다 말한 나머지는 신들께서 도와주실 것이다. 가자, 내가 너와 함께 가겠다." 멘토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이런 말은 얼마나 공허하게 들릴 것인가. 그러니 '아버지의 오랜 친구'도 아닌 사람이, 예컨대 교육 현장에서,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신뢰를 얻어 누군가의 멘토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를테면 함께 우는 시간 같은 것일까. '위대한 탄생'의 두 눈물이 그런 생각을 하게 했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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