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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해외에서 알아주는 한국 감독, 김 박 봉 외에 더는 없나요?

입력
2011.02.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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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한국일보 주최 세계여성리더십컨퍼런스 참석을 위해 한국을 첫 방문한 할리우드 스타 시고니 위버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호감을 드러냈다. 그는 “‘괴물’을 두 번 봤다”고 했고, ‘마더’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리버’(한강)라는 단어를 스스럼없이 쓸 정도로 ‘괴물’에 대한 위버의 애정은 깊었다.(위버의 반응을 전하자 봉 감독은 “‘마더’ DVD를 보내주고 싶다”고 말했고, 그에게 위버의 미국 집 주소를 알려줬다.)

지난달 ‘그린 호넷3D’ 홍보를 위해 방한한 프랑스 출신의 미셸 공드리 감독도 “한국 감독 중 봉 감독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위버와 공드리의 발언에 뿌듯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개운치 않은 여운이 남았다. “여전히 봉 감독인가?”

해외 영화인들을 접할 때마다 촌스럽지만 본능적으로 한국영화에 대해 묻는다. 그들의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한국 감독에 대한 선호도는 지역별로 갈리는데 유럽 영화인들은 김기덕 박찬욱 감독을, 미국 영화인들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을 주로 입에 올린다.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유럽인의 취향과, 할리우드 장르영화에 익숙한 미국인들의 선호도를 엿볼 수 있다. 박찬욱 감독은 할리우드 장르영화의 특징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연출력 때문에 두루 사랑을 받는 듯하다.

해외 영화인들이 세 감독 이름만 언급하니 일종의 고정관념까지 생긴 듯하다. ‘토토의 천국’과 ‘8요일’의 벨기에 감독 자크 반 도마엘은 “이름 모를 한국영화에 반해”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았다. 도마엘은 “통조림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려나간 한 사내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만 머리에 맴돌았고 답을 찾아주지 못했다.(나중에 알아보니 태국영화 ‘시티즌 독’이었다. 도마엘은 태국영화 때문에 한국을 첫 방문한 것이다!)

한국 감독 이름을 어눌하게 발음하는 해외 영화인들의 모습이 반갑지만 최근엔 그 기쁨이 반 토막 난 기분이다. 달달 외운 모범답안처럼 세 감독의 이름만 언급하는 해외 영화인들을 오래도록 보다 보니 이젠 식상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최근 한국영화계가 새로운 재목들을 길러내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해 씁쓸하다. 2006년을 고비로 불황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충무로의 또 다른 우울한 자화상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올해는 해외 영화인들로부터 좀 더 다양한 한국 이름을 듣고 싶다. 새해, 영화 담당 기자의 작은 소망이다.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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