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라는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시기에 '추리닝'(트레이닝복)이라니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어도 부족할 판에…."
8일 오후 서울 한양여자대학교 의상학과 교수실. 20대 초반의 대학생 예닐곱 명이 이틀 뒤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경기맘 D라인 패션쇼' 막바지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번 쇼는 S라인 몸짱을 위한 평범한(?) 패션쇼가 아니다. 배불뚝이 아줌마를 위한 특별한 잔치다. 모델은 모두 임산부, 하여 이름도 임신한 몸매 곡선을 형상화한 'D라인 패션쇼'다. 그것도 대학생 대상 공모전이다.
20대 초반 미혼, 출산기피 세대들에게 임신이나 출산 분야는 관심 밖이었던 터라 걱정이 많았던 게 사실. 더구나 대학 교과 과목엔 여성복 골프웨어 승마복 등 몸짱들을 위한 디자인만 즐비할 뿐 임산부를 위한 내용은 없다. 이론도 없고 체계도 없는 분야였던 것.
그러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국 대학생들로부터 152개의 작품이 쇄도했다. 1차 심사를 거쳐 본선에 오른 20개의 진출작품이 패션쇼에서 대상을 놓고 한판 승부를 겨룬다.
대학생들은 "임산부 디자인과 관련한 그런 약점이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했다. 최현명(21ㆍ배화여대)씨는 "S라인 몸짱이나 깡마른 몸매를 위한 디자인에 식상해 있었다"라며 "정형화한 교과 과정이 없었기에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고 했다.
임산부를 위한 옷은 무엇보다 달마다 달라지는 신체의 변화를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김송이(20ㆍ극동정보대)씨는 "임신을 하면 시간이 갈수록 배가 부르고 가슴도 커지는 등 짧은 기간 내에 빠른 신체 변화가 이뤄지는데, 이를 예측하고 디자인에 접목시키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임신한 사촌언니의 자문을 받기도 하고 어머니의 경험담도 들었다. 인터넷 임산부카페에 가입해 그들이 임부복에 대해 털어놓는 불만들을 참고하기도 했다.
또 예민한 시기 임산부들의 정서 상태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태교에 도움이 되도록 밝으면서도 차분한 색깔의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그 덕분인지 한복의 전통 복식을 접목한 작품이 1차 심사위원단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임산부의 건강을 고려해 옷감도 천연 소재를 사용해야 하고 통기성도 감안했다. 그러면서도 최신 패션 감각을 표현한 미적 요소도 가미했다. 성은지(20ㆍ한양여대)씨는 "임산부에 대한 고정관념처럼 굳어진 추리닝을 훌훌 벗어 던지길 바란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그네들이 공들인 작품보다 임신ㆍ출산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했다. 임재청(20ㆍ극동정보대)씨는 "그들의 옷을 짓기 위해 행동이나 사고방식을 따라 하다 보니 임신ㆍ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이 줄고 결혼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지도교수인 한국의상디자인학회장 김순심 서원대 교수는 "저출산이라는 사회문제를 옷을 통해 극복해보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에서 패션쇼를 진행하게 됐다"며 "참가자 및 임산부 모델들의 호응도 등을 토대로 임부복 디자인 학습 내용을 대학 교과과정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패션쇼는 10일 오후 2시부터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무료로 열린다.
글ㆍ사진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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