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첫 장편소설 <제국익문사> 를 낸 강동수(50ㆍ사진)씨가 13년만에 두 번째 소설집 <금발의 제니> (실천문학사 발행)를 펴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강씨는 현직 언론인(국제신문 논설위원)으로 일해오다 최근 작품 활동에 속도를 낸 모양새다. 지난해엔 이번 소설집 첫 머리에 실린 단편'수도원 부근'이 오영수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금발의> 제국익문사>
7편의 단편이 수록된 <금발의 제니> 는 주로 아름다웠던 청춘의 시절을 회상하는 중년 남성의 쓸쓸한 회고담이다. "그 옛날 금발의 제니처럼 생기 있고 통통 튀던 모습"이 세월의 흐름 속에 "가뭇없이 사라지고 피로에 지친 사십대 초반의 여자"가 된 표제작'금발의 제니'의 은영처럼 찬란했던 과거와 남루한 오늘이 대비되는 구조다. "청춘의 빛깔로 혼자서도 형형하게 빛나던 아름다운 시절"을 반추하면서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게 되는 오늘의 적막, 그 아득하고 외로운 '사이'의 시간들이 강동수의 소설을 채우고"(문학평론가 서영인) 있는 것이다. 금발의>
소설은 탄탄한 문체와 안정감 있는 구조가 빛을 발하지만, 이 같은 아름다운 추억과 무력한 현재의 대비가 자칫 무기력한 중년의 신세 한탄으로도 치부될 수도 있을 터. 작가는 추억에 대한 회한을 넘어 좀 더 근원적인 삶의 덧없음에 접근하면서 그 위험의 경계를 넘는다.
예컨대 '수도원 부근'에 등장하는'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다'는 전언 같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을 연상시키는 이 속삭임은, 달리 말하면 아름다운 것은 지금, 여기, 내 가까이에선 불가능하다는 얘기에 다름없다. '수도원 부근'에서 체칠리아가 사랑했던 어릴 적 성당 친구 안드레아는 수사가 되고, '호반에서 만나다'에선 기자인 '나'가 사랑했던 후배 설란은 결혼 몇 달 전 잠적해 종내 바그다드에서 숨지고, '금발의 제니'에선 '아교를 바른 것처럼 한 치의 틈도 없이 단단하게 붙어' 사랑했던 은영과 영준은 미국 유학 생활의 풍파 끝에 이혼한다. 그들이 열망했던 찬란한'금발의 제니'는 잠깐 스치듯 그들 곁에 왔다 달아나는 것이다. 소설은 그러니까 추억담의 형식 속에서, '가까이 붙잡아두지 못하는 아름다움'이라는, 인간 삶의 비극성에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그들의 사랑을 곁에서 지켜보는 화자인'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39쪽)고 말한다. 단지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감싸 안을 뿐이다. 마치 글쓰기가 그러하다는 듯이. 문학평론가 남송우씨는 "작가가 보여주는 낭만적 비극성은 양날을 가진 언어적 비수로 독자의 가슴과 머리를 겨냥하고 있다"며 "세속적인 현실주의자에겐 따뜻한 인간애를 열어 보이고, 환상적 낙관주의자들에겐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비치는 반사경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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