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권력이양) 지금 시작돼야 한다"(4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시간이 필요하다. 준비해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5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어느 쪽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정권에 대한 미국의 속내일까.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이 권력이양의 신속성을 강조한 것이지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를 뜻한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나중에 나온 클린턴 장관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와 관련, 오바마 대통령은 명목상의 대통령직은 유지하더라도 실질적 권력은 과도체제에 이양한 상태, 즉 '사실상의 퇴진'을 의도했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서방 지도자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질서있고 평화적인 이양이 지금 시작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백악관도 이집트 집권당의 지도부 사퇴를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추가조치가 필요하다"며 무바라크 대통령을 계속 압박했다.
나아가 클린턴 장관은 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47차 국제안보회의에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이 주도하는 과도체제를 상정, 이에 대한 힘실어주기를 본격화하고 나섰다. 클린턴 장관은 "술레이만 신임 부통령이 이끄는 이집트 정부의 이양과정을 지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적절한 준비없이 혁명이 독재자를 전복하면 또 다른 독재자에게 공중 납치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며 '준비'를 위한 과도체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클린턴 장관이 이집트 시위대의 '대통령 즉각 퇴진'요구에 맞서면서 '준비'를 강조하는 것은 무바라크의 몰락이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등장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때문이다.
다만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장관의 발언이 서로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은 유동적인 이집트 상황에 신축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두 사람의 역할분담일 수도 있고, 미 행정부 내에서 아직 이라크 정책에 대한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때문일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클린턴 장관의 발언에 대해 "무바라크가 너무 빨리 물러날 경우의 위험을 고려해 정권의 점진적 변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즉각 권력이양'언급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무게중심을 옮겼지만 술레이만 부통령이 "9월 대선 전까지는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배경이 무엇인지가 현재로선 분명치 않은 것은 변수다. 무바라크 대통령으로부터 실권을 제거, 권력을 과도체제로 이양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이집트 군부의 입장이 엇갈려 마찰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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