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구들이 지배했던 백두급(무제한)에서 기술씨름을 고집했던 신예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있다.
주인공은 실업 5년 차 이슬기(24ㆍ현대삼호중공업)로 '제2의 이만기'로 불렸던 기대주. 초등학교 6학년 때 씨름을 시작한 이슬기는 중ㆍ고 시절뿐 아니라 대학에서도 장사 타이틀을 싹쓸이하며 한국씨름의 미래로 주목 받았다. 특히 그는 장유고 3년 때 8개 전국대회에서 전관왕을 차지하는 등 최강자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2007년 인제대를 거쳐 현대삼호중공업 씨름단에 입단한 이슬기의 실업무대 적응기는 힘겨웠다. 민속씨름 첫 해에는 팀이 유일한 프로구단이라 대한씨름협회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고 이듬해에는 오른 무릎 후방십자인대 파열로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다. 2009년 대회에 출전하면서 조금씩 경기 감각을 끌어올렸던 그는 지난해 추석장사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했지만 이태현(구미시청)에게 패했다. 올해는 천하장사 출신인 윤정수와 황규연이 소속팀에 버티고 있었던 탓 에 한씨름 큰마당(단체전) 출전 기회조차 그다지 많이 잡지 못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기술씨름의 본색을 드러낸 이슬기는 설욕전에 성공하며 '이슬기 시대'를 알렸다. 그는 지난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끝난 2011 설날장사 백두급에서 이태현을 3-1로 물리치며 생애 첫 백두급 정상에 올랐다. 이슬기와 이태현의 신구 맞대결은 500g으로 승부가 갈리는 등 한치 양보도 없었다.
제한 시간을 넘겨 승부를 가리지 못한 첫 판에서 500g의 차이로 이슬기가 환호했다. 138.9㎏의 이슬기가 139.4㎏의 이태현보다 몸무게가 500g 적게 나가 기선을 제압했다. 2-1로 앞선 마지막 판을 팽팽한 힘 싸움 끝에 안다리 기술로 이태현을 제압한 이슬기는 모래판에 앉은 채 감격의 눈물을 흘렀다. 이슬기는 "마지막 판을 꼭 기술로 이겨내고 싶었는데 그렇게 돼서 너무 기쁘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씨름계는 이슬기의 정상 등극에 흥분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기수 협회 홍보이사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160㎏ 상한제 도입으로 이슬기의 기량은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백두급임에도 빠르고 다양한 기술씨름을 선보이는 이슬기는 씨름계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스타'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씨름의 신황태자' 칭호에 대해 이슬기는 "루즈한 경기보다는 팬들이 원하는 빠르고 다양한 기술로 승부를 걸어 씨름의 인기 부활에 앞장 서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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