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선생님 장례식장에서 수상 소식을 들었는데, 그 때, 뭐랄까, 약간 얼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상이란 게 기쁘고 좋은 일인데, 먹먹한 기분만…"
소설가 김애란(31)씨가 문학동네의 제2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날은 소설가 박완서씨가 타계한 지난달 22일이었다. 젊은작가상 최종심사 회의가 열렸던 이날, 6명의 심사위원 중 육성 대신 메모로만 전달된 심사결과가 당일 새벽 영면한 고인의 몫이었다. '영원한 현역'이라 불렸던 박씨가 타계 직전까지 임했던 생의 마지막 작업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 읽기. 15편의 후보작에서 그가 고른 7편 중 4편이 이날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됐고 대상은 그가 꼽았던 김씨의 '물속 골리앗'에게 그대로 돌아갔다.
김씨는 아직 수상소감을 출판사측에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박완서 선생을 먼 발치에서만 봤을 뿐 특별한 인연은 없었지만, 그의 타계 소식에 "미처 몰랐는데, 산이 사라지고 나니 큰 산이 거기 있었고 나도 거기에 기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떠올랐다"고 했다. 김씨는 "이번 수상이 특히 선생님과 관련된 거라, 차분하게 시간을 갖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다"며 장례식장에서의 먹먹함이 여전한 듯 말을 아꼈다.
<달려라, 아비> (2005) <침이 고인다> (2007) 등 두 권의 소설집을 통해 비정규직을 떠도는 젊은이들의 밀폐된 삶과 내면 풍경을 탁월하게 포착해온 김씨는, 그의 세대의 상처, 불안, 좌절과 함께 호흡해온 대표적 작가다. 첫 소설집이 나오기도 전인 2005년 11월 한국일보문학상을 거머쥐며 일찌감치 문단의 주목을 받았던 기대주. 이번 수상이 6ㆍ25세대의 치열했던 동시대적 정신이 '88만원 세대'로도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침이> 달려라,>
대상 수상작 '물속 골리앗'은 지난해 여름 발표된 단편으로, 그의 세대의 새 징후를 예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평단의 관심을 일찍부터 받았다. 반지하방, 원룸, 고시원, 학원, 편의점 등 '88만원표 공간'의 일상사를 정밀하게 묘파해온 김씨는 이번 단편에서 그 무대를 제공한 사회적 환경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그의 눈엔 그들 세대를 둘러싼 현실이란 이를테면'공사중'이란 팻말과 타워크레인으로 표상되는 삽질이다. 특히 이번 소설은 그 모든 삽질을 쓸어가는 대홍수라는 신화적 상상력까지 동원한다. 재개발 지역의 한 소년이 그 홍수 속에서 홀로 살아남는, 질긴 생의 의지가 이 소설이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다.
문명의 종말과 인류를 쓸어가는 대재앙적 사건은 최근 한국 소설가들의 상상력을 휘어잡고 있는 테마. "작품을 쓰고 난 뒤에야 그런 경향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는 김씨는 "제 경우에는 저를 포함해 다들 뭔가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근래 여름철에 비가 너무 많이 왔는데, 비 소리를 듣고 있다가 문득 '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창문을 열면 항상 크레인이 눈 앞에 보였는데, 그런 것들과 연결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의 작품은 종말과 파국을 다루는 최근 한국 문학의 시선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문학과사회 2010년 겨울호에서 "'물속 골리앗'은 설사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오늘이라 할지라도 그 다음 날을 상상하는 인간의 버릴 수 없는 희망을 유성우처럼 눈부시게 그려낸다"며 "종말의 상상력이 더욱 다양한 문학작품을 창조하는 역설적 에너지가 되고 있다"고 평했다.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연재중인 장편'두근두근 내 인생'의 마지막회분 원고도 최근 마무리한 김씨는 "그동안 체력을 길러서 쓰겠다는 생각에 이제야 장편 소설을 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등단 10년 이내 작가들이 지난 한해 발표한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에는 김씨의 작품 외에도 김사과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김성중의 '허공의 아이들', 김유진의 '여름', 김이환의 '너의 변신', 이장욱의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정용준의 '떠떠떠, 떠'등 7편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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