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중자금을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는 자문형 랩어카운트(자문형 랩) 시장에 '박현주발(發) 빅뱅'움직임이 일고 있다. 증권업계 일각에선 '빅뱅이 아니라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금융빅뱅은 언제나 수수료 인하 경쟁에서 촉발됐던 점을 감안하면 자문형 랩 시장에 지각변동이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이달 안에 자문형 랩(연 3%)을 비롯,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랩 수수료(연 2.8%~3.2%)를 일정 수준 인하할 계획이다.
이는 박 회장이 전날 금융투자협회의 금융투자인상 시상식에 참석, "현재 투자금액의 3% 안팎을 받고 있는 자문형 랩 수수료는 지나치게 높다"고 밝힌 데 따른 것. 박 회장은 "현재 금리가 4% 수준인데 이런 금리 수준과 비교하면 자문형랩 수수료가 비싼 편이고 또 그만큼 증권사들이 서비스를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국내 증시에서 펀드 열풍을 주도했던 박 회장과 미래에셋의 이 같은 행보는 자문형 랩 시장에서 향후 수수료 인하 전쟁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까지 다른 증권사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자문형 랩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삼성증권의 경우, 미래에셋이 선도하는 수수료 인하에 동조할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준현 삼성증권 사장은 "수수료는 기본적으로 시장이 결정할 문제"라며 "지금은 자문형 랩의 수수료 인하 경쟁보다 고객 가치와 만족도를 높이는 데 치중해야 할 때"라고 잘라 말했다.
일각에선 자문형 랩 수수료가 비싸다는 박 회장의 주장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문형 랩의 경우 계좌잔액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적용하기 때문에 실제 수수료는 3%가 아닌 2%대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삼성증권의 경우 자문형 랩 계좌 잔액 1억원 이하에 대해선 연 3.2% 수수료를 적용하지만, 10억~30억원에 대해선 2.0%, 100억원이 넘으면 1.2%를 적용하고 있다. 10억원을 맡길 경우 실제 수수료는 연 2.46%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펀드와 달리 자문형 랩은 투자자문사 포트폴리오에 기초하되 증권사가 개인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계좌별로 운용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감안하면 가격 파괴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문형 랩 시장의 후발주자인 미래에셋이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수수료 인하카드를 꺼낸 것"이라며 "다른 증권사들이 굳이 미래에셋 페이스에 말릴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가격경쟁은 후발주자가 주도하는 법. 증권업계 후발주자였던 키움증권의 온라인 주식거래 수수료 파괴가 결국 업계 전체의 지각변동을 가져왔듯이, 미래에셋의 행보도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다. 한 시장관계자는 "미래에셋 발 수수료 파괴로 고객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순간 결국 다른 대형사들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문형 랩은 1월 한달간 2조2,350억원의 뭉칫돈을 빨아들이며 지난달말 현재 7조원대 시장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증권이 전체 시장의 39%를 차지하고 있고, 그 뒤를 우리투자증권(14%) 한국투자증권(13%) 미래에셋증권(11%)이 잇고 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자문형랩이란
증권사가 고객 성향에 맞게 자산 구성과 운용, 투자자문까지 통합적으로 서비스해주는 랩 어카운트(종합자산관리계좌). 증권사나 은행이 투자자문사에서 종목 선정에 대한 자문을 받아 투자자 돈을 대신 굴려주는, 간접투자와 직접투자 중간의 맞춤형 상품이다. 60~70개 종목을 담고 있는 펀드와 달리 10~20개 종목에 집중 투자하므로 '고위험ㆍ고수익형'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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