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광다이오드(LED) 제조업체 사장 A씨는 요즘 애가 탄다. 설 연휴가 끝났는데도 숙련 기술자인 김모(35)씨가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출근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선 김씨가 설 연휴기간 동종업계 선배들과 만난 뒤 이직을 결정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A사장은 "10대 그룹을 포함한 대기업들이 앞다투어 LED 조명 시장에 진출하면서 직원들이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며 "인력 유출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대기업과 경쟁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다.
벤처ㆍ 중소기업들에게 최근 인력 유출 비상령이 내려졌다. 미래 친환경 관련 업종과 전자ㆍ정보기술(IT) 업종 등을 중심으로 대기업들이 공개 혹은 비공개로 대거 경력사원 모집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소 기업들은 공들여 키운 우수 인력들을 뺏기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론 직원 이직을 막기 위해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는 중소 업체들도 적지 않게 생겨나고 있다. 경기도 안양의 한 통신 관련 벤처기업은 다음달부터 직장 내 선후배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멘토링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선후배 관계를 끈끈하게 묶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3월께 몇몇 대기업이 경력직 사원을 뽑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건물에 입주에 있는 또 다른 벤처 회사도 이달부터 사원 생일에 맞춰 꽃을 선물하기로 하는 등 직원들의 마음잡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감성적인 방법만 동원되는 것은 아니다. IT시뮬레이션 업체인 도담시스템스는 최근 사무실 인테리어와 책상, 컴퓨터 등을 새로 바꿨다. 대기업보다 낳은 호텔 수준의 근무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취지다. 이처럼 형편이 괜찮은 중소기업 중에는 '사내 유보금 일부를 복지기금으로 만들어 직원들을 위해 쓰겠다', '해외연수 등의 자기개발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등 여러 묘책을 쏟아내기도 한다.
현재 이들 중소기업들이 집중 관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직원들은 통상 입사 5년차 미만의 젊은 층이다. 업무 숙련도와 체력은 좋은 반면 임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어 스카우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용포털 인크루트의 2011 이직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3~5년차인 대리급의 51.8%가 이직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3~4년차가 임금 대비 일을 가장 많이 하는 연차여서 대기업 입장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중소기업들의 이 같은 대책 마련이 효과가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휴대전화 부품 제조사에 다시는 박모(36)씨는 "설 연휴기간은 동종 업계 선후배들과 안부 인사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이직을 화제로 삼는 경우가 많다"며 "대기업과 임금 및 복지수준에서 워낙 차이가 크기 때문에 이직을 막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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