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의 폭력조직으로 꼽히는 흑사회(黑社會)와 손잡고 국내에 수백억원대의 마약을 대량 유통시킨 조직폭력배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규모뿐만 아니라, 과거 마약 거래까지는 손 대지 않았던 조폭들이 이제 돈만 된다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마약 범죄에 진출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적이다.
흑사회 조직과 친분이 있는 부산 유태파 고문 김모(56)씨는 2009년 9월부터 최근까지 중국으로 직접 건너가 히로뽕 밀수를 주도했다. 조직원들 사이에서 '산타'(마약을 나눠주는 사람)로 불린 김씨는 히로뽕을 밀반입하는 운반총책, 소위 '지게꾼' 역할을 했다. 그는 중국 산둥성 옌타이(煙臺)에서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냉동어선의 선장실에 마약을 숨기는 수법으로 단속을 피했다. 수십 개의 가명을 사용하고 공중전화로만 통화하며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렸다. 이런 식으로 김씨가 밀수하다 적발된 히로뽕만 5.95㎏. 북한산으로 추정되는 이 히로뽕은 1회 투약기준(0.03g)으로 19만8,333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으로 198억원어치에 달한다.
국내 밀반입된 마약은 빠른 속도로 전국에 유통됐다. 김씨는 밀수한 히로뽕을 부산의 역이나 터미널 부근에서 조폭 행동대장들을 모아놓고 분배했다. 판매총책을 맡은 유태파 고문 A씨는 수감 중 알게 된 조폭들에게 히로뽕을 무상공급하고 판매수익을 나눠 갖는 방법으로 손쉽게 유통망을 확보했고 단기간에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였다.
김씨가 밀수한 히로뽕의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며 최고 10배까지 수익이 나자 전국의 조폭들이 마약 구입 자금을 모았다. 자금은 차명계좌를 이용한 환치기나 인편을 통해 중국 쪽으로 빠져나갔다. 조폭들은 양질의 히로뽕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감정전문가를 보내고 중독자에게 투약해 반응을 살폈다.
이처럼 마약을 판매하다 적발된 폭력조직은 모두 14개파로 서울 청량리파와 부산 칠성파, 광주 동아파, 인천 간석동파, 수원 북문파, 의정부 신세븐파, 충남 논산파 등 전국에 걸쳐있다.
흑사회 조직원들이 히로뽕 밀매와 판매대금 수금을 위해 입국하기도 했다. 대도시의 조선족 거주지역을 거점으로 마약을 판매하던 흑사회 조직원 3명은 흉기를 지닌 채 검찰 수사관들과 대치하다 붙잡혔다. 흑사회는 삼합회(三合會)와 더불어 중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거대 폭력조직으로 국내에도 22개파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김희준)는 6일 마약 밀수와 유통을 주도한 김씨 등 국내 조직폭력배 9명과 흑사회 중국 선양(瀋陽)지역 두목 정모(35)씨 등 조선족 출신 흑사회 조직폭력배 4명을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김희준 부장은 "조폭이 흑사회와 연계해 히로뽕을 직접 밀수한 사례를 적발하기는 처음"이라며 "조폭들이 최근 도박장과 오락실 단속이 강화되자 단기간에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마약범죄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가 2000년부터 최근까지 중국에 100회 이상 출입한 점으로 미뤄 확인된 히로뽕 이외에 더 많은 양의 마약이 밀수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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