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공식, 비공식 채널을 총동원해 대화 공세를 펴온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 대상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에도 걸쳐 있다. 북한이 자신을 압박해 온 한미일에 손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정부에 대한 북측의 대화 제의와 주장은 신년 들어 공개된 것만 해도 10여 차례나 된다. 북측은 신년사설을 통해 '남북 대결 상태 해소'를 주장한 뒤 지난달 5일 정부ㆍ정당ㆍ단체 연합성명을 통해 당국간 회담의 무조건 개최를 처음 제의했다. 그 뒤에는 국회회담 등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잇달아 제안했다. 설 연휴 때는 남북 국회회담을 요청하는 편지를 우리 국회에 보냈다고 주장했고,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개최도 촉구했다. 우리 정부가 대화제의 채널의 격(格)을 문제삼자 인민무력부장이란 '당국자 채널'로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의하기도 했다.
북측은 미국과 일본을 향해선 주로 비공식 채널로 접근하고 있다. 한미일의 공조체제가 굳건해 공식 채널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북측은 뉴욕채널로 미국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면서 '배급의 투명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기로 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달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와의 면담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요청은 미국측이 일정상 문제로 거절해 무산됐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8일 전했다. 북측은 미국측과의 민간 차원 대화도 추진하는 등 북미접촉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북측은 일본과의 물밑 접촉도 시도하고 있다.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일본외무장관이 지난 연말"(북한이) 보이지 않는 형태로 여러 가지 교섭을 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지난달 24일"일본인 납치 문제와 핵∙미사일 문제 등 현안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면서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겠다"며 '선(先) 납치 문제 해결 후(後) 국교정상화'란 기존 입장을 다소 수정했다. 북측으로선 일본의 반응을 얻어내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이처럼 끈질기게 대화 공세를 펴는 배경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춘궁기를 앞두고 식량 문제 등 내부 사정이 다급하기 때문이란 분석이 있다. 한반도 정세가 대결 국면에서 해빙 무드로 바뀌는 상황에서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또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남북대화가 우선 돼야 한다는 미국 등의 입장을 감안해 대화 노력의 명분을 쌓는 것이란 지적도 있다. 김정은 후계체제를 조기에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과 한반도 긴장 완화가 필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우리 정부는 대화 재개를 위해 북측이 추가 도발 방지를 약속하고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일 것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도 우리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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