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18일 새벽 2시. 이종락(58) 목사가 운영하는 장애아보호시설 주사랑공동체의집 거실 벨이 울렸다. 순간 이 목사는“또 누군가 아이를 버렸구나”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철렁했다. 조심스레 현관 옆 벽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를 열어보니 탯줄도 채 정리되지 않은 생후 10일 정도의 사내애가 낡은 포대에 쌓여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기저귀 가방과 우유병, 그리고 ‘가슴 속 십자가를 안고 살아갈 저를 이해해 달라’는 생모의 편지가 있었다. 생년월일도 모르는‘새벽이’와 이 목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다운증후군에다 선천성 심장질환인 ‘대동맥 협착증’까지 갖고 태어난 새벽이는 심장에 구멍이 나 있어 제 힘으로 숨 쉬는 것조차 버겁다. 우유병을 빠는 시간도 두 배나 걸린다. 이러다 보니 9개월 여가 지났지만 몸무게는 겨우 6㎏정도. 최근까지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단 채 치료를 받아 왔다. 이 목사는 “폐렴 증세를 보였지만 위험한 고비는 넘긴 상태”라며 “4월 초 심장 수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가 새벽이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키우게 된 건 어릴 적 뇌 손상으로 25년째 전신마비로 누워있는 아들(은만)이 계기가 됐다. 이 목사는 “14년간 아들의 병수발을 하며 다른 아이들의 아픔을 알게 됐고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 2009년 12월 처음 설치한 베이비박스로 얻은 자녀 5명을 포함해 18명을 돌보고 있다. 특히 안면기형과 시청각 장애가 있는 생명이는 설 연휴 직전인 이달 1일 ‘찾지 말아 달라’는 엄마의 쪽지와 함께 베이비박스에 버려져 가슴을 아프게 했다.
2007년에는 미혼모가 낳은 한나를 먼저 보내는 아픔도 겪었다. 이 목사는 “6년 간 돌보던 한나가 세상을 떠난 11월 11일 자식을 가슴에 묻는 심정을 알게 됐다”며 “그 날 이후 평생 이 아이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요즘에도 아이를 맡아달라는 전화가 일주일에 4~6통씩 걸려온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데 버릴까, 같이 죽을까’라는 식의 반(半) 협박성 전화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장애가 있다고 아이를 버려서는 안 된다”며 “버려진 아이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부모조차 포기한 아이들을 기꺼이 거두는 일이 자신에겐 행복이라는 이 목사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90%이상 낙태를 하는 게 현실”이라며 “태어날 기회조차 박탈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목사는 “손이 부족해 하나하나 돌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10여 년간 엄마 노릇을 하며 묵묵히 아이들을 돌봐준 부인에게 고맙다”고도 했다.
새벽이 등 이 목사가 돌보는 아이들의 사연이 알려지자 온정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어린이 후원 시민단체인 사랑밭새벽편지((02)2613-8864) 주관으로 지난달 말부터 진행되고 있는 ‘희귀병 어린이돕기’후원금 행사에 목표액(3,000만원)에 가까운 2,750여 만원이 모였다. 사랑밭새벽편지 관계자는 “이달 13일까지 모인 돈은 새벽이를 포함한 아이들의 치료비에 쓰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새벽은 하루 중 가장 어두웠다가 가장 밝아지기에. 지금은 가장 어두워도 훗날 가장 밝은 사람이 돼 세상을 비춰 주길.” 나눔의 기쁨을 느끼기 위해 동참했다는 김용배씨가 새벽이를 위해 남긴 기도였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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