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가 이집트 민주화 시위와 관련,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집트의 권력이양 작업이 "지금 시작돼야 한다"며 "무바라크 대통령이 올바른 결정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도 이집트 군부는 시위대를 보호할 "분명한 책임이 있다"며 "시위대에 대한 폭력사태를 이집트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현 정권으로는 이집트 정정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고 판단, '포스트 무바라크'로의 권력 이양이 가급적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언론들은 분석했다.
미 상원도 앞서 3일 "민주적 정치 시스템으로 즉각 전환돼야 한다"며 이집트 과도정부 구성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아흐메드 샤피크 신임 이집트 총리는 이날 무바라크 대통령이 "명예로운 하야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이집트 정치권에서도 무바라크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들은 "미 행정부가 이집트 현 정권 및 야권 인사들과 다각도로 접촉하고 있다"며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 수순과 방식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30년간 장기 집권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은 9월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지만 3일 미 abc 방송과의 회견에서 "국가적 혼란을 우려해 당장 사임하지 않겠다"며 즉각 퇴진 요구는 일단 거부한 상태다.
무바라크의 거부에도 불구, 전문가들은 5일 예상되는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야권 지도자들의 회동에서 권력이양 등 정치일정의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백악관 고위 관리들은 공정한 선거를 위해선 비상계엄법 폐지와 헌법개정 등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이 이미 이집트 정부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미 행정부는 무바라크 대통령 퇴진→술레이만 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로의 권력이양→9월 대선을 통한 민주정부 수립 등 이집트 민주화의 3단계 수순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야권 지도자로 부상한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최대 야권 조직인 '무슬림형제단'등은 "선 퇴진, 후 대화" "대선 일정 변경"등을 주장하고 있어 협상결과가 주목된다.
앞서 무바라크 대통령은 지난 1일 대국민 연설에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또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을 통해 자신의 아들을 포함한 일가도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5일 12일째 계속되고 있는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친 무바라크 시위대와 반정부 시위대가 무력 충돌하면서 4일 3명이 숨지는 등 최근 3일 동안 11명이 숨졌다고 이집트 당국이 밝혔다. 또 4일 이집트 사진기자 1명이 저격수가 쏜 총에 맞아 숨졌고, 현장 취재중이던 한국 및 서방 기자들도 경찰을 포함한 친정부 세력으로부터 폭행과 감금을 당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워싱턴=황유석특파원 aquarius@hk.co.kr
한창만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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