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피겨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딴 데니스 텐(18ㆍ카자흐스탄). 2008~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벨라루스) 우승자로, 카자흐스탄의 '국민 남동생'인 그에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키162㎝의 가녀린 체구에 곱상한 용모를 지닌 텐은 카자흐스탄 내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스타 중 한 명이다.
알마티 출생의 텐은 구한말 강원도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민긍호(閔肯鎬) 선생의 외고손자다. 1907년 8월 일제가 당시 지방군 소속이던 원주 진위대를 해산하려 하자 이에 저항, 3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의병을 조직한 민 선생은 홍천과 춘천, 횡성, 원주 일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민 선생은 그러나 원주 치악산에서 일본군에 붙잡힌 뒤 탈출하다 순국했다.
민 선생의 부인은 이후 가족들을 데리고 북만주를 거쳐 연해주에 망명했는데 1937년 소비에트 정부가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시킬 때 카자흐스탄 지역에 정착 했다. 민 선생의 후손은 현재 알마티에서 6대째, 50여 일가를 이루고 있는데 민 선생의 외손녀인 김 알렉산드라가 바로 텐의 할머니다.
지난해 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11위에 오른 텐은 3, 4일 열린 동계아시안게임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합계 208.89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카자흐스탄 피겨 사상 첫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간 동계아시안게임 남자 피겨 부문은 일본과 중국의 독무대였다.
어린 시절 태권도를 배우기도 했다는 텐은 "나는 반은 한국인이고, 반은 카자흐스탄인이다. 두 나라 모두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과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한국팬들에게 정말 고맙다. 한국은 내게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한국과 카자흐스탄팬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일"이라고도 말했다. 어릴 적부터 예체능에 재능이 많았던 텐은 5년간 음악 학교에 다니면서 합창단 소속으로 2002년 부산을 찾기도 했다. 당시 부산에서 열린 세계합창대회에서 텐이 속한 합창단은 은메달을 따냈다.
그는 '행운의 돌'에 얽힌 한국과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작년 1월 전주 4대륙선수권대회를 끝내고 원주에 있는 외고조부 묘소에 다녀왔어요. 거기서 돌 하나를 가져와 늘 갖고 다니면서 힘들 때마다 꺼내 보곤 했죠. 그러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텐은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선율에 몸을 맡긴 쇼트프로그램에서 76.22점의 여유로운 성적표를 받았다.
이튿날 프란츠 리스트의 '죽음의 무도'에 맞춘 프리스케이팅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인 텐은 진땀 나는 우승을 완성했다. 그는 금메달을 지킨 비결을 행운의 돌에 돌렸다. "나는 하프코리안"이라고 재차 강조한 텐. 그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국을 찾아 좋은 연기를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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