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경제를 개혁하겠다는 약속도, 오는 9월 대선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자신은 물론 아들 가말을 비롯한 일가도 출마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소용이 없었다. 무바라크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지난달 25일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집트 국민들의 요구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무바라크는 떠나라"는 구호는 시위 12일째인 5일(현지시간)에도 수도 카이로를 비롯해 알렉산드리아, 수에즈 등 이집트 전역에 메아리쳤다. 4일을 '무바라크 하야의 날'로 정하고 평화 행진을 벌인 시위대 1만여명은 밤을 새워 타흐리르 광장을 지켰다. 이집트 정부는 기존 오후 5시부터 오전 8시까지였던 통행금지시간을 오후 7시부터 오전 6시까지로 4시간 완화했다고 밝혔지만, 애초 통금령을 지킬 생각이 없던 시민들은 오전부터 속속 모여들었고, 금새 수만명으로 불어났다. 평화 행진이 전날부터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과격양상을 보이던 반정부 시위는 다소 주춤해졌지만 긴장감은 여전했다. AFP는 이날 "시위의 중심지인 타흐리르 광장에 새벽 한 때 수분간 총성이 들렸다"고 불안한 상황을 전했다. 또 치안 불안 상황을 틈타 시나이 반도에서 가자지구로 연결돼 이스라엘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수송관이 폭파되는 테러도 발생했다. AFP통신은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는 무슬림 형제단을 비롯한 여러 야당들이 이스라엘에 가스 공급을 중단하라고 요구해왔다"고 보도했다.
앞서 4일에도 광장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서는 반정부 시위대와 친 무바라크 시위대가 또 다시 투석전을 벌였고 총성이 들리는 등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졌다. 친 무바라크 지지자들은 이날을 '충성의 날'로 정하고 반정부 시위대의 '하야의 날'에 맞섰다. 최대 야당 무슬림 형제단은 친 무바라크 시위대에 사복 경찰이 참여,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물론 기자들과 시위대를 가리지 않고 붙잡아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흐메드 사미 파리드 이집트 보건장관은 4일 "이번 주 들어 반정부 시위대와 무바라크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 간의 충돌로 11명이 사망하고 부상자 85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은 지난달부터 10일 넘게 이어온 유혈시위로 지금까지 300여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지만 이집트 정부는 부상자 수가 최소 5,000여명이라는 것 외에 정확한 사상자 숫자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일부 반정부 시위 지도자들과 아흐메드 샤피크 신임총리가 4일 오후 늦게 만나, 협상을 벌였다고 AP통신이 5일 보도했다. 협상에 나선 시위대 지도자 압델-라흐만 유세프는 "총리에게 무바라크가 물러나지 않을 경우 시위를 게속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사임하는 것도 우리의 제안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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