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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고연희씨 '그림, 문학에 취하다'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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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고연희씨 '그림, 문학에 취하다' 펴내

입력
2011.02.05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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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무인(空山無人) 수류화개(水流花開)'. 조선 후기 천재화가 최북(1712~1786)이 그린 '공산무인도'에는 이 여덟 자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어딘지 신비롭고 아련한 분위기 정도는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림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이 여덟 자의 의미를 알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미술사학자 고연희씨는 최근 펴낸 <그림, 문학에 취하다> 에서 이 그림의 바탕이 된 '공산무인 수류화개'라는 시문을 파고들어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보자.

이 구절은 "빈 산에 사람 없고,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라는 뜻으로 중국 송나라 문장가 소동파가 지은 명구다. 당나라 말기의 화가 장현의 그림 '아라한상'을 구하게 된 소동파는 그림에 있는 나한 18명의 모습을 차례로 묘사한 18수의 '십팔대아라한송'을 지었다.

'공산무인 수류화개'는 제9수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한다. "식사 이미 마쳤으니 바리때 엎고 앉으셨네 / 동자가 차 봉양하려고 대롱에 바람 불어 불 붙이네 / 내가 불사(佛事)를 짓노니 깊고도 미묘하구나 / 빈 산에 사람 없고 물 흐르고 꽃이 피네."

마지막 구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깨달음 후에 다시 보는 산수, 즉 나와 외물의 경계가 사라진 물아합일의 경지를 뜻한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소동파만의 창작은 아니다. 이미 당나라 때부터 '공산' 혹은 '공산무인'이란 말이 시어로 쓰였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당나라 시인 유건의 시에 '공곡무인(空谷無人) 수류화개(水流花開)'란 구절이 있는데 소동파는 이를 몰랐을까.

고씨는 이 그림에 대해 "화면의 중앙을 텅 비워두었다가 후에 인장을 찍은 것이 눈에 띈다"면서 "천재화가가 만들어낸 공산무인의 분위기"라고 말했다. 사람이 없는 텅 빈 정자가 공산(空山)임을 알려주고, 화면의 왼 편에 흐르는 물(水流)과 오른편 끝에 보일 듯 말 듯한 붉은 기운을 점 찍은 듯 표현한 게 꽃이 핀 것(花開)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옛그림을 감상하려면 그림 자체만이 아니라 이처럼 옛 문학작품과 역사, 당대의 분위기 등을 폭넓게 아는 것이 필요하다. 고씨는 이 책에서 그림의 바탕이 된 문학작품을 친절하게 해설하고 있다.

옛그림이 시문을 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시문의 서사적 흐름을 그대로 옮기기도 하고, 서정적 감동을 시와 그림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시문의 주제를 비유적으로 그린 경우도 있고, 그림만으로 이야기 전달이 어려우면 그림에 글을 보태기도 한다.

이 책은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비롯해 강세황의 '수석유화'와 육유의 '한거자술', 이인문의 '송하한담도'와 왕유의 '종남별업', 김홍도의 '추성부도'와 구양수의 '추성부'등 28개의 그림과 그에 관련된 문학작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은 조선시대의 것이지만 그 속에 깃든 문학작품은 중국 당나라 송나라 시대 명사들의 글이 많다. 아트북스 발행ㆍ356쪽ㆍ2만원.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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