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대법원장 등 대법관 5명·헌법재판관 3명 연내 교체… 색깔 변화 가속 전망
연초부터 법조계에 대대적인 인적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양승태 대법관(27일 퇴임) 후임으로 이상훈 법원행정처 차장이, 이공현 헌법재판관(3월13일 퇴임) 후임으로 이정미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잇달아 내정됐다. 1일에는 일신상 이유로 사직한 김희옥 전 헌법재판관 후임으로 박한철 신임 재판관이 취임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용훈 대법원장을 포함해 참여정부 때 임명된 대법관, 헌법재판관들이 줄줄이 교체될 예정이다. 대법원에서는 이홍훈 대법관이 5월,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이 11월 퇴임한다. 여기에 이용훈 대법원장이 9월 임기 만료로 물러나면 연내 대법관 14명 중 5명이 바뀐다. 이명박 대통령이 앞서 임명한 양창수 신영철 민일영 이인복 대법관까지, 전체의 3분의 2 이상이 현 정부에서 선임된 인사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특히 이 대법원장 교체는 사법부의 지각변동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이 대법원장 재임 동안 사법부는 PD수첩 사건, 미네르바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배임사건 등에서 현 정권의 코드와 다른 방향의 판결을 내렸다. 주요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진보 성향의 의견을 낸 이홍훈 박시환 김지형 대법관은 이처럼 정부여당과 각을 세웠던 사법부의 방향타 역할을 맡아왔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이 지명권을 갖고 있는 대법원장이 교체되면 사법부의 컬러도 확 바뀔 공산이 크다는 점. "참여정부 시절 '좌향좌'했던 이념 노선이 '우향우'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내년에 임기만료되는 박일환 김능환 전수안 안대희 대법관이 교체되고 대법관 14명 전원이 현 정부에서 선임된 인물로 채워지면 이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에서도 박한철 재판관과 이정미 내정자, 7월 임기만료로 퇴임하는 조대현 재판관 후임자까지 올해에만 재판관 9명 중 3명이 바뀐다. 내년 9월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김종대 재판관이 물러나면 참여정부 때 임명된 재판관의 3분의 2 이상이 교체된다.
인적 변화로 인한 이념 지형의 변화는 헌재에서 더 가파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 추상적인 헌법 규정에 대해 나름의 규범을 제시해야 하는 헌재는 일반 법원에 비해 재판관 개인의 주관적 가치판단이 상당 부분 작용한다. 재판관의 정치적 이념과 성향이 인선의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이는 헌재의 위헌 결정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참여정부 5년 동안 위헌법률 신청 건수는 총 123건으로, 그 중 합헌(46건) 결정이 위헌(44건) 결정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3년 동안의 위헌법률 신청 159건 중에서는 위헌(80건) 결정이 합헌(24건) 결정의 4배 가까이 됐다. 이는 참여정부 때 임명된 헌법재판관들이 이명박 정부에서 재임하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을 낳는다. 현 정권의 코드와 엇나갔던 야간옥회집회 금지, 미네르바 사건 때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의 위헌 결정 등이 대표적 사례다.
물론 우리 헌법은 정권에 따라 헌재의 판결이 급격히 변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관 지명권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에 분산시켜 놓고 있다. 하지만 여당이 수적으로 우세한 국회 상황에서는 여권의 입김이 강하기 마련이다. 결국 재판관 교체가 이뤄지면 헌재의 이념 지형도 바뀔 공산이 큰 셈이다. 법조계에선 이 대통령이 검찰 출신의 박한철 재판관을 지명한 것을 두고 레임덕 현상 방지와 함께, 헌재에 대한 영향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임현주기자 korear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