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설 앞두고도 썰렁
"요즘 사람들은 설에 차례도 안 지낸대요. 차례상에 조상들한테 도와달라고 도미, 밀어달라고 민어 놓는다 했는디 당최 사가는 사람이 없어!" "차례는 무슨, 산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구먼…."
설을 사흘 앞둔 지난달 31일 낮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한가운데 작은 술판이 벌어졌다. 생선가게 아낙들이 무료함을 참다못해 추위라도 이길 요량으로 장작난로 옆에 모여 앉은 것. "널린 게 안주거린데 이런 낙이라도 없으면 못 살아. 지금까지(오후 2시) 개시도 못했다니까."
한 자리에서 30년간 어물전을 한다는 영광 아줌마는 "장사가 안 돼도 너무 안 된다"고 소주잔을 들이켰다. "오데 요즘 젊은 사람이 돈 한두 푼에 신경이나 쓰나, 좀 비싸도 따땃하고 칼칼한데서 장볼라카지." 옆의 아낙도 거들었다. "설 대목은 마트에나 있겠지."
이어 발길을 돌린 곳은 마장동 축산물시장. 냉장ㆍ냉동기들이 뿜어내는 한기 탓인지 노량진보다 싸하고, 시장 통은 휑했다. 과일이 쏟아져 나오는 추석과 달리 축산물 소비가 많은 설을 앞두고 있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실제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오가는 이들은 대부분이 연휴기간 먹을 고기를 사가는 외국인 노동자들. 설음식 준비로 나온 사람은 드물었다.
영덕축산 사장은 "구제역 탓에 쇠고기는 팔리지도 않고 돼지고기는 값이 작년 말보다 두 배로 뛰었다"며 "가격이 올라도 매출은 작년 설 반절도 안 된다"고 했다. 상인들은 구제역도 구제역이지만 정부의 뒷북대책이 한몫 했다고 입을 모았다. 도매를 하는 P마트 관계자는 "수입돼지고기 관세(25%)를 한시적으로 없앤다고 하자 수입업자들이 설을 앞두고도 통관을 미뤄 물량이 달리니 돼지고기 값만 폭등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명절은 명절. 대형 재래시장은 인산인해였다. 제기동 경동시장은 막바지 제수용품 구입에 나선 인파로 북적댔다. 앞으로 한 걸음 내딛기 힘들 정도. 그러나 10년째 건어물상을 하고 있는 최원숙(48)씨는 "사람 많아도 정작 팔려나가는 건 예전만 못하다"고 푸념했다. 사람들이 꼭 필요한 만큼만 소량으로 사가 풍요 속 빈곤이라는 것.
더구나 경동시장보다 규모가 작은 신당동 중앙시장, 오장동 중부시장은 같은 날 비슷한 시각 한산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중앙시장에서 22년째 야채장사를 하는 정순희(54)씨는 "올해도 완전히 틀려 먹었다"며 거리만 바라봤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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