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다운 대목이다. 주말로 이어지는 연휴만 닷새다. 어느 때보다 설 연휴를 노리는 영화들이 많다. 제법 덩치 큰, 명절영화다운 영화들이 대거 흥행 일전을 벌인다. 한국 영화 3편, 외화 4편이 극장가를 장악할 태세다. 골라보는 재미, 참 오랜 만이다. 관계자들이야 속이 좀 타겠지만 관객들은 신이 난다.
한국영화 3인방 만으로도 비좁다
'글러브'(감독 강우석)와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감독 김석윤), '평양성'(감독 이준익)이 각축을 벌인다. 휴먼 드라마와 퓨전사극이라는 전혀 다른 외피를 둘렀지만 밑바탕에 웃음을 깔았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잔혹한 장면이나 선정적인 남녀관계, 너저분한 육두문자를 최대한 자제하고 가족 단위 관객을 노린다는 점도 세 영화의 공통분모다. '실미도'와 '왕의 남자'로 각각 1,000만 관객을 모았던 20년 지기 강우석 감독과 이준익 감독이 맞붙어 호사가들의 흥미를 돋는다.
'글러브'는 청각장애인 야구부의 1승을 향한 눈물겨운 고투를 감동과 웃음으로 전한다. 충무로 최고 흥행술사 강 감독의 직구와도 같은 우직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다. 청각장애인들의 소리 없는 투혼에 퇴물 프로야구 투수 상남(정재영)과 야구부 지도교사 주원(유선)의 달콤한 사연이 얹히며 여러 재미를 던진다. 강 감독 영화 특유의 인상적인 대사도 이 영화의 강점 중 하나. 전체관람가로 가족끼리 연인끼리 봐도 전혀 부담이 없는 영화다.
'조선명탐정'은 '연기 본좌' 김명민의 첫 코믹 연기 도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정조의 밀명을 받들어 공납비리 사건의 배후를 조사하는 명탐정(김명민)의 웃음기 배인 활약상을 그렸다. 명탐정의 뒷바라지를 마다 않는 개장수 서필(오달수)과 명탐정의 콤비 연기가 웃음의 포인트. "이 양반이…"라고 불경스런 말을 던지고선 "양반을 양반이라 불렀는데 뭐 잘못됐냐"고 능청을 떠는 서필의 대사 등 언어유희도 꽤 흥미롭다. 추리극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려고 하나 서스펜스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점은 이 영화의 허점.
'평양성'은 2003년 이준익 감독의 존재감을 알린 '황산벌'의 속편 격이다. 평양성 공략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신라와 당나라, 이들에 맞서는 고구려 등 삼국의 사활을 건 전쟁을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백제군 출신으로 신라군이 된 거시기(이문식)의 기구한 인생, 고구려 지도층의 분열, 신라의 실리주의 등을 현재에 빗대 묘사한다. 대규모 전투 장면 등 볼거리도 적지 않다.
만만치 않은 면모의 외화 빅4
외화들도 강자의 면모를 갖췄다. 액션영화 '그린 호넷3D'와 코미디 '걸리버 여행기', 시대극 '상하이', '타운' 등은 겉보기에도 대작의 풍모를 풍긴다.
'그린 호넷3D'는 철 없는 미디어재벌 2세의 어설픈 영웅 놀이를 유쾌하게 그린다. 세상의 정의에는 딱히 관심이 없으면서도 공명심 때문에 영웅이 되는 브릿(세스 로건)과 그의 동료 케이토(저우제룬)의 활약상이 할리우드의 물량지원 속에서 펼쳐진다. '이터널 선샤인'과 '수면의 과학' 등에서 기이한 상상력을 펼쳐냈던 프랑스의 미셸 공드리 감독이 연출했다. 전형적인 권선징악 히어로물의 아류로 공드리 감독의 인장이 강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걸리버 여행기'는 조너선 스위프트 원작의 동명 소설을 현대적으로 다뤘다. 뉴욕의 별볼일 없는 사내(잭 블랙)가 소인국에서 엉뚱한 영웅이 되는 모습을 그렸다. 'G패드'와 '걸빈 클라인' 등의 제품을 등장시켜 웃음을 사는데 웃음의 눈높이는 어른보다 아이 쪽에 가깝다. 전체관람가라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엔 무난한 편이다.
'상하이'는 배우들의 면면만으로도 흥미롭다. 할리우드 배우 존 쿠삭과 중국어권 스타 궁리, 저우룬파, 일본 간판 배우 와타나베 켄이 출연한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앞둔 1941년 상하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열강의 치열한 첩보전을 스케일이 큰 화면에 담았다. 격동의 시대를 유명배우들을 붓 삼아 그려내지만 내용 전개는 좀 산만한 편. 역사를 뚝심 있게 그려내는 연출력이 좀 아쉬운 영화다.
범죄 액션 영화 '타운'은 할리우드 스타 벤 애플렉의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미국 보스턴 빈민가를 배경으로 은행 강도단의 범죄 행각과 이를 쫓는 경찰의 활약상을 전한다. '히트'를 연상시키는 총격전과 차량 추격전이 눈길을 잡고, 강도단 리더 더그(벤 애플렉)와 강도 피해자 클레어(레베카 홀)의 안타까운 사랑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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