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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걱정스러운 3세 경영세습

입력
2011.02.0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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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드라마에서 가장 흔해 빠진 남자 주인공은 재벌 3세다. 한결같이 귀공자 풍의 외모에 세련된 매너, 도도하고 까탈 부리는 성격을 지녔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헌신적인 남자로 그려진다. 최근 종영된 SBS 드라마 의 현빈이 대표적이다.

현실로 눈을 돌려봐도 가히 재벌 3세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삼성 현대자동차 두산 신세계 효성 등의 재벌 3세들이 속속 최고경영자(CEO)로 나서고 있다. 국내 대표 기업들이 창업 60년을 지나면서 3세 경영체제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훈련과정이 생략된 CEO들

물론 현빈처럼 멋있고 재력을 갖춘, 더욱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죽음도 마다 않는 재벌 3세는 판타지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현실 속의 재벌 3세들은 '따도남'(따뜻한 도시 남자)이 아니라, '편도남'(편법으로 부를 세습한 도시 남자)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이들이 CEO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봐도 정도(正道)나 원칙과는 거리가 멀다. 정운찬 전 총리가 칼럼집 에서 지적했듯이, 재벌 3세로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세법과 주식회사 제도의 맹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경우가 많다.

재벌총수가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유가증권을 자녀에게 헐값으로 넘겨주는 게 대표적인 방식이다. 총수 일가가 비상장회사를 설립해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로 매출과 수익을 올려 승계자금을 마련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당연히 회사와 주주들 몫을 가로채는 범죄 행위다. 30대 재벌의 계열사가 2005년 702개에서 지난해 말 1,069개로 50% 이상 급증한 것도 재벌총수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계열 분리가 활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CEO로서의 경영 능력은 검증됐을까? 심리학자 김태형은 이라는 책에서 창업세대인 이병철 정주영 김우중 세 사람의 공통점으로 돈을 삶의 목적으로 삼지 않은 것, 이윤 추구에서 나름대로 정도를 걸으려 한 것,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민족을 신뢰한 것 등을 꼽았다. 이들은 정경유착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경영 능력과 기업가 정신으로 성공신화를 일궈냈다.

재벌 2세만 해도 형제자매가 많아 경쟁 환경 속에서 생존논리를 터득해야 했고 창업세대를 넘어서기 위해 사업 확장에 매진해 온 그룹이다. 창업자에게 20년 이상 혹독한 경영훈련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재벌 3세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선 재계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쉽게 돈을 번 데다 독자나 외아들이 많아 인내심이나 도전적 기업가 정신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임원 승진 4~5년 만에 CEO에 등극하는 초고속 승진도 재벌 3세의 전매특허다. 해외 유학을 통해 글로벌 감각과 선진 경영기법을 익혔다는 외피가 씌워지지만, 온실 속의 화초처럼 편하게 자랐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시대 상황이 과거보다 훨씬 엄격한 윤리적 기준과 사회적 책임감을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재벌 1,2세와는 달리, 사회적으로 고립돼 끼리끼리 어울리고 결혼한 경우가 많아 특권의식이 강한 이들이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진국처럼 무조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너경영 체제에도 장점은 있다.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실무경험을 쌓으며 자질과 능력을 인정받아 CEO에 오른 오너라면 더 적극적이고 책임감 있게 기업을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3세들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며 30대 중ㆍ후반에 CEO에 오르는 게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시장 검증ㆍ주주 동의도 실종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능한 CEO 발탁은 기업 생존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다. 경영 능력을 갖춘 재벌 3세가 시장의 검증과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CEO에 오르는 걸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윤 추구에서 나름대로 정도를 걸었던 창업세대의 경영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3세들이 부친의 후광으로 손쉽게 총수 자리에 오르는 것은 한국경제의 불행이다. 한때 거센 사회적 논란이 됐던 경영세습이 사상 최대의 실적 잔치 속에서 묻혀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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