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 중반 나이에 어머니는 처음으로 단골다방이 생겼다. 어느 다방인가 물었더니 동백다방이라고 한다. 동백다방은 내 초등학교 등굣길에 있던 다방인데 4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어머니가 사는 곳에서 동백다방으로 오고 가려면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한다.
어머니와 친구 분들은 버스를 타고 다방에 출퇴근한다. 한때 젊은이들의 다방이었던 동백다방이 이젠 일흔 어르신들의 아지트가 되어버렸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동백다방에서는 단골에게 점심대접을 한다고 한다. 다방에서 생선을 굽고 생김치를 찢어 푸짐한 잔치가 벌어진다고 한다.
동백다방이 있어 어머니는 친구들과 함께 지루했던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다. 다방 주인 마음이 따뜻해 행색이 초라한 손님이 오면 우동과 김밥을 내놓고, 독거노인이 찾아오면 갈 때 김장김치 한 포기를 쥐어준다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다방을 찾았을 때 귀가 찢어라 울리는 하드록 음악소리,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새로운 청춘의 해방구를 만난 듯 가슴이 쿵쿵 뛰었는데.
이제는 다방의 점령군이던 젊은 친구들은 커피숍 시대를 거쳐 커피전문점으로 몰려가고 박물관이 되어버린 다방에는 어르신들뿐이다. 여동생이 동백다방에 다녀왔다. 마음이 짠했던 모양이다. 동백다방 편하게 다니시라고 어머니 용돈을 올려드렸다. 이번 설에 고향가면 나도 동백다방에 다녀와야겠다.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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