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야권과의 개헌 및 정치개혁 협상 카드를 꺼내 들었으나 야권은 이를 거부했다. 지난달 29일 무바라크 대통령이 내놓은 정국 수습책인 신임 부통령과 총리에도 반정부 시위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강도를 한 단계 높인 것이지만, 여전히 야권과 시민을 달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국영TV에 나와 "무바라크 대통령이 개헌과 정치개혁 문제 등을 놓고 모든 정당과 대화를 시작하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시위대의 하야 요구가 최고조에 이른 시점에 헌법 개정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협상 결과가 조기 퇴진 등 자신의 거취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이날 내무장관과 경찰청장을 경질한 것도 강경 진압을 주도한 경찰 수뇌부를 교체함으로써 여론의 반전을 꾀한 조치라 볼 수 있다.
무바라크 정부가 제시한 개헌안에는 대통령선거 출마자격 완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반정부 세력이 그 동안 줄기차게 요구해 온 사안이다. 야권 입장에선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수용할 수 있는 유인에 해당한다. 반면 무바라크 정권에 시간을 벌어주고 정치적 거래의 유혹에 휘말릴 위험도 뒤따른다.
그러나 야권은 일단 '협상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집트 야권 단체와 활동가 위원회는 1일 공식 논평을 통해 "무바라크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는 한 어떤 협상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야권 온건파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적어도 4일까지는 물러나기를 바란다"며 사임 시점을 구체적으로 못박아 당분간은 독자적인 과도정부 구성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엘바라데이 측이 활발한 공개 행보를 이어가는 것과 달리 야권 세력의 또 다른 축인 무슬림형제단은 다소 몸을 사리는 눈치다. 이슬람 급진세력의 집권을 극도로 경계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무슬림형제단의 모하메드 엘 벨타구이 부대표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서방의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협상 과정에서) 전면에 나설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와 반정부 세력이 이미 물밑 협상에 돌입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CNN방송은 이날 술레이만 부통령 측 관계자의 말을 빌려 "정부와 야권이 정치개혁 논의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다만 협상 국면으로 전환하더라도 야권 분열 가능성, 외세 개입 등 변수는 많다. 협상 실패는 민중의 재봉기를 촉발할 수 있지만 거꾸로 민주화 열기의 소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