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에 설교는 차고 넘친다. 그러나 홍수에 마실 물 없다고 정작 살아 있는 말씀은 드물다."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이자 대구 샘터교회 담임목사인 정용섭(58)씨가 쓴 (홍성사 발행)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는 "성서 해석은 없고 말씀을 상품처럼 포장하는 기술자만 넘친다"고 비판한다. '설교에 대한 신학적 반성'인 이 책은, 왜 그리 됐고 옳은 설교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한국 교회에 던지는 고언이다. 국내 유명 목사들의 설교를 실명 비판한 세 권의 비평서 로 잘 알려진 정 목사는 이번 책에서는 설교의 본질을 돌아본다.
교회 강단에서 약장수처럼 떠드는 목사들은 쌔고 쌨다. 은총의 감격을 신파조로 외치거나 '아멘'을 연발하도록 도취경을 이끄는 설교도 수두룩하다. 이런 풍조에 대해 그는 하나님은 보험상품이나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아니라며 말씀을 팔지 말라고 꼬집는다. 청중을 사로잡는다고 좋은 설교가 아니라며 "청중의 비위를 맞추려고 '쇼'를 하는 자리에 어찌 성령이 임하겠느냐"고 질타한다. 자의적 해석을 앞세우는 주입식 설교 대신 성서 텍스트를 중심에 놓는 '소극적' 설교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서에 담긴 하나님의 계시를 설교자 본인이 확보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 교회의 강단이 '영적 골다공증'에 걸렸다고 진단한다. "기독교 신앙의 토대와 영적 깊이 없이 말씀을 구호처럼 외치는 나팔수"같은 목사, "기도 전도 봉사만 열심히 하면 영적으로 충만한 줄 알고 감정적 엑스터시를 영성으로 착각하는 신자"들이 환자다. 그는 진정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낮추고 비우고 기다리며 말씀의 본질로 들어가는 것이라며, 비움과 낮춤의 영성을 강조한다. "때로 침묵하고 기다려야 하는데, 너무 설치니 오히려 말씀이 죽는다"며 "청중과 설교자가 죽어야 성령이 산다"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올바른 설교란 "신탁에 충실했던 구약의 예언자 전통과, 하나님 나라에 온전히 자신을 맡긴 탓에 십자가 처형까지 마다지 않은 예수님의 전통에 서는 것"이다. 그는 "참된 예언자는 대중에게 외면받더라도 신탁에 집중했다"고 환기시키면서, '종교적 여흥'이 돼 버린 설교를 후려치는 죽비 소리로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라디아서 1:10)
영적 골다공증에 걸린 속 빈 설교의 치유책으로 그가 제시하는 처방은 인문학적 소양과 성서 텍스트에 대한 역사비평, 그리고 조직신학이다. 인문학적 소양은 하나님과 이 세계의 막막한 경외 앞에서 말씀을 제대로 해석하는 데 필요하다. 역사비평은 성서를 하늘에서 뚝떨어진 책으로 읽는 게 아니라 역사적 맥락에서 보는 것이다. 예컨대 노아의 홍수가 고대 이스라엘이 바빌론 유수 당시 바빌로니아의 대홍수 신화를 흡수해서 나온 이야기임을 알면 초자연적 신의 사건으로만 보는 피상적 이해에서 벗어나 우상 숭배를 경고하는 이 텍스트의 핵심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신학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성서의 전체 흐름을 파악하려는 노력이다. 그는 "성서는 수천 년 동안 수백 명이 기록한 것이라 각각 부분적인 것을 이야기한다"며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해서는 성서의 본질을 깨달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창세기에서 천지창조는 태초의 7일로 끝났지만 조직신학으로 보면 우주의 종말로 완성되는 현재진행형 사건이며, 따라서 이런 눈으로 보면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척점에 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성서와 하나님의 본질을 놓치는 설교가 범람하는 한국 교회에서 '상대적으로' 옳은 설교자로 서울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 경동교회 박종화 목사, 경기 양평군 모새골교회 임영수 목사를 꼽는다. 이들의 설교는 청중의 비위를 맞추거나 닦달하듯 하지 않고 성서 텍스트와 기독교 신앙 중심이라는 것이다.
설교비평서 3권에 이어 이번 책으로 설교론을 마무리한 그는 이제 다시 세 권의 책을 쓰려고 한다. 한민족 전통과 인문학적 세계 이해에 바탕을 둔 365일 매일 기도문, 교회 구조나 목회자의 성 문제를 포함해 젊은 목사들에게 하고 싶은 솔직한 이야기, 그리고 기독교의 근본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 그것이다. 전작인 설교비평서는 실명 비판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욕 먹을 각오를 단단히 했지만 정작 교계에서는 심심할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입 다물고 논쟁이 없었다는 것은 곧 교회 사회가 죽었다는 뜻이다. 이번 책은 실명 비판이 아니니 더 조용할 듯하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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