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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中버전 '투란도트'에서 빛난 소프라노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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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中버전 '투란도트'에서 빛난 소프라노 박지현

입력
2011.02.0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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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소프라노 조수미씨의 출세 무대로 기억하는 유니사(UNISA)콩쿠르에서의 관객상, 오페라 부문 특별상, 본선 우승, 기립 박수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무대를 보고 난 사람들은 타이틀 롤 투란도트 공주보다 하녀 류의 박지현(38)씨를 이야기했다. 그가 1월 25~28일 예술의전당에서 연기한 투란도트는 칼리프왕자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져 자결하는 여인의 내면을 강렬한 서정으로 성취해 냈다.

박씨의 연기는 이 오페라의 또 다른 주인공이 류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족했다. 팜므 파탈 카르멘의 그늘에 가리기 쉬운 청순한 여인 미카엘라에 초점을 맞출 때 또 다른 '카르멘' 보기가 가능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워낙 강한 성격의 주역에 가려지는 데다 출연 시간도 짧다는 실제적 문제를 이겨 낼 수 있다면 이들의 열연은 때로 타이틀 롤이 갖게 마련인 선점 효과를 능가한다.

칼리프왕자를 지키기 위해 자결하며 부르는 '얼음장 같은 공주의 마음'에서 그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는 동지섣달 칼바람처럼 객석에 파고들었다. 특히 감정을 최대치로 이입, 흐느끼듯 부르는 아리아가 주는 심리적 여파는 타이틀 롤의 그것보다 보다 길고 컸다. 중국 성악가들의 잔치가 될 수도 있었을 그 무대에서 그는 테너 박지응씨와 함께 유이(唯二)의 한국인이었다. 배경과 인물을 중국화하는 등 지나친 중국화 때문에 원작의 감동이 희석될 수도 있었을 무대서 정통의 힘을 보여 준 순간이었다. 별 존재감이 없을 수도 있는 배역에 특유의 개성으로 강한 인상을 선사한 그를 영화에서 흔히 쓰는 '신 스틸러(scene stealer)'로 불러도 좋으리라.

그러나 거기 오기까지는 필연의 시간이 내장돼 있었다. 성신여대 음대, 서울대 대학원, 이탈리아 유학 등의 과정이 그것이다. 이탈리아 언론에서 최고의 콜로라투라라는 평가를 받은 그에게 이번 무대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류로 무대에 서기는 처음이에요. 제의가 왔을 때 확신은 안 섰지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1주일 동안 맹연습했어요." 그래서 암보와 연기까지 완성해 오른 이 무대에서의 반응은 아직 꿈 같다. "기적 같은 호응에 저도 놀라워요."

중국팀과의 첫 작업이 사막을 걷다 오아시스 발견한 기분이라고 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국적 화통함이 인상적이었어요. 연출(천씬이)의 결단력 역시." 이탈리아 베르디국립음악원을 최고 점수로 졸업한 그는 2009년 귀국, 모교 성신여대에서 교수로 있다. 이제 진정한 출발이라 믿는다. 앞으로 조그마한 콘서트라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의 바탕에는 그 같은 생각이 깔려 있다.

음반 작업에 거는 기대 또한 크다. "소개되지 못한 한국의 새 가곡을 중심으로 음반을 만들고 싶어요. 외국 독창회 때는 항상 한국 가곡을 넣었죠."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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