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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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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

입력
2011.01.3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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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 서넛을 만나 막걸리를 한 잔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였다. 친구 중 누가 가장 출세를 했느냐, 돈을 많이 벌었느냐 하는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던 끝에 누가 가장 힘이 센 자리에 올랐느냐는 소리가 나왔고, 이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기관(혹은 사람)은 어딘가 하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답은 구구각색이었다. 누구는 대통령이라고 하였다. 대통령이 가장 큰 권력이라는 것은, 신문과 방송을 보면 즉각 알 수 있기 때문에 이의가 없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5년이면 그만이다. 권력을 행사할 기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대통령보다 힘 센 교육부

군대를 드는 친구도 있었다. 끔찍했던 군부 독재는 차치하고서라도 대한민국의 젊은 남자들을 2년 가량 붙들어 두니,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곳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권력은 20대 초반의 남성에게만 제한적으로 행사될 뿐이라는 반론이 있었다. 이어 누군가는 예전의 중앙정보부를 들었고, 누군가는 요즘의 재벌을 들었다. 그 역시 그럴 법 하였지만, 권력 행사의 범위가 포괄적이고 직접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모두 최고의 권부라고 부르기에는 하자가 있다는 반론에 부닥쳤다.

이렇게 갑론을박하는데, 중학교 선생님으로 있는 친구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말인즉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는 교육부라는 것이다. 모두 뜨악해 하자, 그 친구가 나름의 이유를 들었다. 무엇보다 교육부 정책의 포괄 범위가 굉장히 넓다는 것이다. 곧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가 교육부의 정책 대상이라는 것이다. 하기야 그렇다. 적어도 6살부터 23살까지(만약 대학원 박사까지 마친다면 30대 이상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교육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친구는 교육부의 영향력이 매우 직접적이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예컨대 교육부가 대학 입학 제도를 바꾸면 초ㆍ중ㆍ고등학생이 즉시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는 논술을 대학입시에 도입하자, 초등학생까지 논술학원에 다니는 일이 벌어졌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대학을 졸업하면 그만인가. 그것도 아니란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으면 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교육'으로 진저리를 친다는 것이다. 요컨대 남자건 여자건, 가난하건 부유하건, 서울이건 경상도건,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평생 교육부 정책의 영향력, 다시 말해 교육부가 행사하는 권력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교육부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라는 말이었다.

친구는 끝으로 한 마디 덧붙였다. 자신이 보기에 대한민국의 학생과 학부모는 군대 훈련소의 신병과 같다는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입시 제도를 좌로 바꾸면 학생과 학부모는 좌로 구르고, 우로 바뀌면 우로 구르며, 일어나라고 하면 일어나고, 앉으라 하면 앉으니, 이야말로 아무 것도 모르는 얼뜨기 신병을 훈련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았던 친구들은 그 말에 모두 박장대소를 하였다.

학생과 학부모 맘대로 다뤄

정말 모를 일이다. 교육부가 하는 일은 교육을 잘 해 보자는 것일 터이고, 또 그 교육은 인간을 무지에서 해방시키고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일 터인데, 왜 대한민국 국민들은 교육 때문에 이토록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인가. 왜 대한민국 교육부는 한 해가 멀다 하고 대학 입시 제도를 비롯한 교육제도를 바꾸는 것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친구는 내게 '교육부'를 한 번 연구해 보라고 권했다. 도대체 어떤 계급의, 어떤 지방 출신의, 어떤 학교를 졸업한, 어느 나라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어떤 의도에서 교육 정책을 세우고, 제도를 만들었는지, 그 정책과 제도는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연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대신 젊고 패기 있는 교육학 전공자가 있다면,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를 연구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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