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면 당신을 또 만나고 싶어요. 당신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전북 김제시 연정동 신원마을 박옥분(56)씨는 25년 한결같이 자신의 발이 되어준 남편 오봉석(67)씨의 헌신적인 사랑에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의 수줍은 고백에 오씨는 하반신 장애로 혼자서는 휠체어도 탈 수 없는 아내를 보살피느라 겪어야 했던 모든 고난과 역경이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 장애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교는 생각도 못하고 평생 집안에서만 살아 온 아내를 25년 전 중매로 만나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형편이 어려워 아직까지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그는 부인의 그림자 역할을 하느라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일거리를 찾을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자 수당에다 개를 키워 생활비에 보태고 있다.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해 전등도 거의 켜지 않는데 올해는 혹한이 길어 난방비 때문에 걱정이 많다.
오씨는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부인 곁을 잠시도 떠나지 못한다. 항상 기어 다녀야 하는 아내를 위해 머리를 감겨주고 화장실 데려다 주는 것은 물론 목욕도 시켜준다. 일요일에는 친척이 준 트럭을 타고 교회에 함께 다니곤 했는데 최근에는 기력이 떨어져 아내를 차로 들어 옮길 수가 없어 혼자 예배를 보러 간다.
오씨는 "내가 건강해야 아내를 옆에서 지켜 줄 텐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2004년 한글을 모르는 박씨가 편지를 쓰고 싶다는 마음에 김제시 여성회관에서 운영하는 한글반에 등록하자 오씨가 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통학을 시켰다. 이 같은 지극정성 덕분에 아내는 한글을 터득했고 이를 지켜본 이웃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마을 통장 양관용(52)씨는"몸이 불편한 부인을 헌신적 돌보는 오씨의 지극한 마음씨는 마을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면서 "한국일보가 '내 고장 사랑기금 지원'수혜자를 찾고 있다는 기사를 본 이웃 주민 조영탁씨가 알려줘 신청했는데 이렇게 좋은 소식이 올지 몰랐다"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오씨는"지원금으로 휠체어가 집 밖으로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 아내에게 바깥 구경을 많이 시켜주겠다"며 활짝 웃었다.
김제=최수학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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