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을 텐데 고맙습니다."
대전 동구 용운동의 영구임대아파트에서 딸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 엄윤경(43)씨는 '내 고장 사랑운동'을 통해 조성된 기금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에 고마워하면서도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엄씨는 지난해 말 유방과 목에 암 진단을 받아 치료가 시급한 실정이다. 검사비 부담에 몇 차례 주저하다가 겨우 찾아간 병원에서"몸 속에 2개의 암이 있는 것 같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엄씨를 돕고 있는 동구청 복지정책과 윤순영씨는"아직 중증 단계는 아니지만 초기단계는 이미 지나서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중학생인 딸과 함께 생활하는 엄씨의 유일한 소득원은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돼 지원받는 60만원이 전부. 각종 공과금과 아파트 관리비, 세금 등을 내기에도 부족한 금액이다.
병마에 시달리는 그녀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대전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딸 하나를 둔 상태에서 이혼을 했고 그 충격으로 조울증을 앓으며 전국을 떠돌다 제주도까지 갔다.
정신적인 문제로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당시에는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결심했다"고 엄씨는 밝혔다. 전 남편의 시댁에 맡겨 놓았던 딸도 불러 들였다.
하지만 재혼한 남편은 술만 먹으면 손찌검을 했다. 본인은 물론 딸에게까지 폭행과 폭언을 퍼부었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가정 쉼터로 딸과 함께 도망치기를 수 차례. 견디다 못한 그녀는 딸을 쉼터에 맡기고 본거지인 대전으로 돌아왔다. 몸과 마음이 피폐한 상태라 일자리를 찾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다행히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어 최소한의 생활은 꾸려 갈 수 있게 됐다. 제주에 머물던 딸도 데려왔다. 하지만 딸은 아직도 가정 폭력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엄씨는 이제 병마와의 치열한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이달 중순께 수술 날짜가 잡혔다"며 "병원비가 걱정이지만 열심히 치료를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미용기술을 갖고 있는 그녀는 병이 나으면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는 생각이다.
대전=허택회기자 thhe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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